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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규영 Jun 16. 2019

묘사 - 3

용어

    앞선 장에서 나는 이런저런 어휘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했었다. 그건 인문학을 배우는 사람의 기질이 다분해서 그렇다 보니 양해를 바란다. 모호한 문장을 수백 개 모아서 분명함을 찾는 식으로 학문을 하다 보니 몸에 밴 것 같다. 그런 학습법이 얼마나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이제 훨씬 쉽게 접근해보자. 우선 [묘사]라는 어휘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을 했었다. '드러냄' 같은 말이라고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면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는 것을 모두 묘사라 한다. 이는 따로 다룰 구간이 없으므로 지금 세밀하게 다뤄보겠다.


    묘사의 의미 영역은 광범위하다. '그는'이라는 말은 그 서사물이 3인칭임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일종의 묘사다. 3인칭이라면 당신의 상상에서 그 장면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이라는 말 한마디로 카메라의 제한이 달라지는 것은 이론적인 말이고, 일단 읽는 이의 상상 속 면부터가 다르다.

    "서울은 인구 1000만의 도시이다."는 묘사가 아니다. 단순히 사실을 적어서가 아니라, 저 문장으로 무언가를 상상하기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정말 감성이 풍부한 경우 부루마블 같은 테이블을 그려내서 숫자 천만을 적어둘 수는 있겠지만, 세상 모든 독자가 그만큼 친절하진 않다.

    그렇다면 "서울 중간에 우뚝 솟은 산"은 어떨까? 미심쩍지만 묘사다. 핵심 내용이 '산'이므로 상상 속에서는 가상의 평면체 위에 비정상적으로 솟아오른 푸른 무언가가 제시될 확률이 높다. 아니면 '서울'이라는 도시 이미지에다가 남산이나 북한산 같은 것을 떠올려볼 것이다.

    이렇게, 묘사란 대체적으로 '상상 가능한 것을 제시'하는 문장이다. 소설이라면 당연히 묘사가 95% 정도를 채우고 있어야 하고, 5% 정도의 상상 불가능한 것을 차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상상이 될 법한 것을 제재로 가져오는 게 좋다.

    상상이 된다, 안 된다의 영역에서 묘사를 단정 짓기란 꽤 곤란한 말이다. '그는'이라는 말이 일종의 묘사라고는 했지만, 대부분 '그는'을 묘사로 사용하는 데 실패해버리고 만다. '그는 안타까웠다.' 이게 묘사일까? 아니. 이것은 묘사라고 보긴 힘들다. 상상이 되질 않는다. 이마를 탁 친다든가, 혀를 찬다든가 할 수는 있어도, '안타까워한다.'라는 행위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보여주기]와 [들려주기]의 차이인데, 이는 다른 책들도 충분히 서술을 하고 있으니 굳이 내가 꺼낼 문제도 아니고, 혹여나 꺼냈다가는 표절 같은 문제로 불거질까 하진 않겠다. 상상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묘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상상이 되지 않으면 묘사가 아니다. 그 어떤 추상적인 변화도 묘사할 수 있는 반면, 아주 단순한 것도 묘사에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우리는 '이미지'라는 말도 지나가며 읽었을 것이다. 이미지란 '상상되는 것'이라 말하면 쉽다. "딸기"라는 단어를 읽고 머리에 들어오는 그림이 곧 '이미지'다. "잉어"라는 단어를 읽고, 당신 머릿속에 재생된 생선이 곧 이미지다. "일그러지다."라는 서술부를 읽고, 당신 머릿속에서 그것이 어떤 변화 양태를 말하는 것인지 떠오르는 것도 이미지다. 읽고 떠오르는 것이 이미지다. 그러나 작가는 떠올리고 적어야 한다.

    그렇다면, 묘사를 하려면 우리말을 써야 하며, 우리말을 쓰려면 어휘를 알아야 하는데, 그 어휘에는 이미지들이 삽입되어있고, 삽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면'을 그려낸 뒤에, 그 장면을 가장 알맞고 감질나게 서술할 수 있는 어휘들을 골라서 적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곧 '이미지를 떠올려내고 적는다'라는 행위다. 작문이다.



    그렇게 따지니까 딜레마가 생긴다. 비슷하게 생기기만 하면 장땡일까? 비슷하게 생긴 것만 잔뜩 적으면 묘사라고 할 수 있을까? 멍게 주둥이를 똥꼬라고 표현해도 될까? 6살 소녀가 장난스레 '우'라고 하고 있는 입술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그렇게 연결되면, 소녀의 입을 똥꼬라고 해도 될까? 이미지를 비슷한 걸 다 데려오면 그만인가. 필자의 여자 친구가 송혜교를 닮았다고 '그녀는 송혜교를 닮았다.'라고 적는 게 좋을까?

    물어보자면,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나? 만약 이런 식으로 연예인 이름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예쁘다'라는 형용을 대체하기 위해서이지 그 연예인의 생김새가 필요한 건 아니다. 왜? 닮은 것을 갖다 썼는데 왜 안 쓰는 걸까. 그 빈 공간이 바로 '주제'이면서 '비표면적 이미지'라는 용어가 들어갈 자리다.

    내가 가장 먼저 언급한 '이미지'라는 용어는 '표면적 이미지'에 해당했다. 잉어라는 말을 보고 떠올린 그 친구도, 뿅망치라는 단어를 읽고 생각나는 빨간 친구도. 그저 표면적 이미지다. 표면적 이미지만 챙기려다 보니까 소녀의 입술이 똥꼬가 되어버리는 대참사가 생긴다. 이게 왜 대참사냐고?


    "소영아!"
    내 딸, 소영이가 살아 있었다. 소영이는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대관령 산골에 숨었다가 지금 남편 되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열 살짜리 애가, 열두 살을 만나서 어찌 빌어먹고 살았을까.

    "아버지!"

    나는 딸을 확 끌어안았다. 30년 만의 재회, 나는 내 입술을 똥꼬 같이 오므려 소영의 볼에 비볐다.


    너무 극단적인 예지만, 어쨌든 이렇다. 똥꼬를 딸 얼굴에 비비다니.



    이런 대참사를 막기 위해서, 우리의 문학적 감각이 미리 수를 던져준다. "이건 좀 안 어울리지 않아?" 하고. 그게 요점이다. '어울리느냐', '안 어울리느냐'의 기준. '비 표면적'이미지는 저번 강의 때 말했듯 아주 다양하고 포괄적인 말이다. 그만큼, 어떤 이미지를 채택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이 가미될 수 있다.(정말 조금)


    이 단원은 핵심 단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면서, 난해한 부분이다. 모쪼록 이해가 됐으면 좋겠다. 주제를 담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단원에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예를 안 들어놓은 것은 아니니까 다시 읽어보고 감을 익혀두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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