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세상에서 나의 몇 안 되는 진솔한 친구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내 마음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나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살핀다.
"아들, 별일 없니?"
아버지는 자주 문자를 보내신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문자를 세심하게 본다. '별일 없냐'는 말 뒤에 숨은 의미를 금방 알아챌 정도로 내 눈에는 아버지의 심심함이 잘 보인다.
"아빠, 이번 주말에 만나."
"오케이~"
내가 보자고 하면, 아버지는 늘 한걸음에 달려오신다.
"아빠, 요즘 아빠 좋아하는 프로야구도 한참 하는데 그래도 심심해?"
"야구도 야구인데, 우리 아들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지. 아들이 아빠를 잘 맞춰주잖아."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속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나...'
우리 부자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꼬박꼬박 데이트를 한다. 삼쏘(삼겹살과 소주)를 먹으며 수다 떠는 게 제일 중점적이긴 하지만, 그 뒤에 영화도 보고, 산책도 가는 등 하루를 온전히 즐긴다. 내가 시집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를 쓰고 전국에 북콘서트를 하러 돌아다니던 시점에는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아무래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되고, 독자분들 역시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니 여운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여운을 채우려고 아버지를 자주 찾았다.
"아빠, 내가 북토크하면 사람들이 울어. 마음이 슬픈가 봐."
"아들, 아들 북토크 보면 아빠도 슬퍼. 아들이 아빠의 삶을 위로해주잖아."
"그런가?"
실제 북토크 현장에서 내가 시를 읽고 독자분들에게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아버지와 여행을 갔다가 서로에게 읽어주었던 영상편지를 보여주면,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셨다. 내가 읽는 시와 영상에서 보이는 아버지란 사람은 아들과 함께 함을 마냥 좋아하는 소년이자 아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친구였다. 아마 그 모습이 독자분들 가슴에 같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남은 그 무언가가 다시 눈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영상: 아버지와 데이트
사실 많은 분들이 시간이 지나 아버지라는 사람의 진심을 알았을 텐데 진심을 고백하기 너무 늦었거나, 부끄러워 속마음을 내뱉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어떤 상처로 인해 관계가 멀어졌을 수도 있다. 난 내가 알 수 없는 그 상처까지 좁히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내가 겪은 아버지라는 사람의 외로움, 지나간 청춘, 순수한 사랑을 얘기하는 한 사람이자 그걸 글로 표현하는 작가일 뿐이다.
최근에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가족 간에 공간을 쓰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며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가족 간에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마음 같지 않게 나오는 말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미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존재는 없고, 가족은 더욱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이 내 마음 하나 살피기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런 내 마음을 보려는 부모님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실시간 라이브 토크쇼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때에 더욱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부모님, 자녀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관련해서 작곡을 하는 분도 만나게 되었다. 하이디라는 가명을 쓰는 분인데, 이 분도 <아빠>라는 곡을 내셨다. 실시간 라이브에서 그 곡을 부르는 것을 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는 걸 참느라 혼났다. <아빠>라는 주제의 곡은 아버지의 생일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노래를 들려주는 곡이다.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빠. 이제는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고백하려 해요."
'그 노래를 들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고, 얼마나 많이 위로받았을까.'
나는 하이디와 너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키워드로 곡을 쓰고 시를 써서 그런 것 같다.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 가족을 위한 시와 노래가 함께 하는 공연도 얼마 전 기획하게 되었다.
어떤 분들이 신청하실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가족 간에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만으로도 삶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얘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건네는 소중한 말 한마디 때문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름다워지고, 그 소중한 오늘이 내일을 일으키는 발걸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순간을 함께 하는 분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보람이고, 시를 꾸준히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