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농담하면 재밌게 걸러진다

심각해질 이유 없잖아!

by 김지훈

"이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예요?"

인사 담당자의 물음에 내 후배 사원은,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하더니 "음.. 교육생들한테 전지를 나눠주고요. 삼색 매직으로 글도 쓰고요. 포스트잇도 이쁘게 붙여요. 그리고 음..."이라고 마무리한 후 이상한 기분을 감지한 듯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나에게 '뭐하세요. 어서 제가 망쳐 놓은 사태를 수습하세요.'라는 신호였다.

"아, 저희 교육컨설턴트가 얘기한 것은 워크숍에 쓰이는 주요 도구들을 얘기한 것이고요. 실제로 회사 현안에 맞추어서 규칙을 가지고 진행이 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강사님의 강의력은 물론이거니와 교육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도 중요합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의 대화를 더 주고받으며 그날의 교육 미팅은 잘 마무리되었다.


나는 미팅을 끝나고 나오며 후배를 보며 웃으며 얘기했다.

"야, 뭘 자꾸 이쁘게 꾸며! 그냥 교육할 때 삼단 케이크도 켜고, 와인도 마시자 그래. 나 네가 교육 담당자한테 설명하는데 무슨 파티장에 온 줄 알았잖아."

"오! 그거 재밌겠다. 그럴까요?"

"응? 야 이 ㅆ...... 너 그렇게 말대답하는 거 어디서 배웠어!"

"누구긴 누구겠어요. 대리님도 매일 제가 진진하게 고민 상담하면 장난치잖아요. 자업자득이죠. 그리고 제가 말 잘못해도 어차피 대리님이 커버할 건데요 뭐. 그렇죠?"

"야. 이게 본인 유리한 것만 배워가지고 아주...ㅋㅋㅋ"

사실 미팅이 끝나고 후배에게 교육컨설턴트로서의 전문성과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본인도 이미 내 농담을 통해 어떤 것을 보완해야 할지 알았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실수라고 일컫는 것은 누구나 성장하면서 겪는 일이고 좋게 보면 얼마든지 좋게 볼 수 있다. 좋게 넘어가서 좀 더 크라고, 실수라는 조금 어려운 언덕이 자주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실수를 과대 해석해서 예민하게 트집을 잡으면, 작은 실수도 하기가 어려워서 머뭇거려진다. 본인의 실수에는 엄격하되 후배의 실수에는 조금 관대 해지는 것. 나는 그게 많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 선배의 역할이라고 본다.


실수에 관대해지면, 긍정적인 면도 보인다. 내 후배에게 교육 관련 일을 왜 하고 싶은지 물으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면 본인도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참 해맑고 행복해지는 답변이다. 기획력을 키우거나, 교육컨설턴트로서의 전문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싶은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친구이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 체계를 잡는 구조적인 제안서보다 조직 구성원의 힐링을 위한 조직 활성화 차원의 제안서 일을 맡길 때 좀 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일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면들을 봤을 때, 인사담당자에게 이 친구가 교육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팀빌딩 차원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만드는 과정 중 교육생들 간에 나오는 행복한 시너지와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런 의도와 배경을 아는데, 굳이 실수라고 트집을 잡아야 할까.'

행복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는데, 후배의 실수에도 행복한 경험을 넣어주면, 이 친구가 행복한 교육을 많이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후배가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거나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나태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좋은 면만 좋게 보면, 본인이 즐거워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신입사원 시절, 나의 수많은 실수에 무지막지하게 다가오는 폭격을 우당탕탕 온몸으로 맞다 보니 기가 확 죽은 적이 있다. 회사 선배님들에게 농담 한번 제대로 건네기가 힘들었다. 그때 불금이 되면, 집에 와서 초코칩 쿠키를 두 개 사놓고 입안에 넣으며 '삶은 달콤한 거야'라고 체면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내게 주어진 삶이 마치 하루인 것처럼 TV 드라마 <광개토대왕>을 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우렁찬 기개를 보이는 광개토대왕을 보며 '우와, 나도 저런 기개를 보일 날이 있어야 할 텐데... 근데 광개토대왕은 불금에 초코칩 쿠키 두 개 안 깠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고는 했다.

그때도 나는, 나를 웃기기 위해 실수의 연속이었던 삶에 농담을 걸었다. 실수들이 농담에 걸러지면 삶이 재밌어진다. 그리고, 주변에도 좀 더 여유 있는 사람, 남의 실수에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다. 지금도 사업을 하며 예기치 않은 상황들에 부딪히고, 어려운 상황에 힘들게 대면하는 나를 보며 '우와! 대박. 진짜 너무너무 하기 싫다... 근데 컴퓨터에 앉아서 하기 싫다고 생각하네? 그럼 컴퓨터에 앉아 있는 얘가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혼자 지금 무슨 쇼를 하고 있는지 감상에 빠지다가, 결국은 일을 한다. 하기 싫은데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인가.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일 텐데 잘 웃으면 좋은 것이다. 웃으면 입꼬리가 올라가 복도 같이 온다는데 많이 웃어야겠다. 실제 많이 웃으면 어떤 복이 있는지 공부도 더 하고 그대로 실천을 해봐야겠다.

'아. 혹시나 내가 웃는 게 선명하게 안 보여 복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오늘도 마스크 팩은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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