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딜김 Aug 13. 2021

버블을 통해 보는 케이팝 생태계의 고도화

천재적인 서비스, 디어유 버블


태초에 유에프오타운, 유타라고 불리던 서비스가 있었다. 유타는 모두가 2G 폰을 쓰던 시절에 흥했던 문자 기반의 서비스로, 연예인의 고유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아주 한정된 수의 누군가는 스타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케이팝이 진화하고 시대가 변화하자, '유타'와 같은 서비스는 보다 진화한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스타와 소통할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 '버블'은 세상 어디에도 유래 없는 케이팝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현재는 유니버스(NC가 만든 케이팝 플랫폼)의 '프메' 등 버블과 유사한 서비스들이 유행하며 대부분의 케이팝 아이돌들이 필수로 한 개쯤의 소통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버블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스타가 메시지를 보내면, 팬은 답장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스타는 많은 팬들이 보낸 답장을 받고, 또다시 다음 메시지를 보낸다. 따라서 팬은 마치 스타와 카톡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은 일대 다 대화지만, 일대일 대화처럼 보인다. 팬 시점의 채팅창은 카톡처럼 철저하게 프라이빗한 느낌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버블 캡처가 불가능해져서 다소 예전 캡처만 남아있다. 출처-본인

유타가 일방향적이라면, 버블은 쌍방향적이다. 아니, 쌍방향적인 대화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 도가 텄다. 버블 채팅은 리얼타임으로 이루어진다. 스타가 메시지를 보내팬은 답장하고, 그 후에 이어진 스타의 메세지가 자연스러울 경우 티카티카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티키타카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버블을 이용하면 더이상 유타처럼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스타의 답장을 바라며 목매지 않아도 된다. 물론 스타가 진짜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의 여부는 모른다. 그러나 어쩌다가 티키타카가 성공하면 왠지 스타가 내 메시지를 읽고 답장을 했다는 근거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참고로 아티스트들이 보는 버블 화면은 이렇다고 한다.

버블은 정말로 액정 뒤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버블을 이용하는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내 친구처럼 말하고, 이모티콘을 쓰고, 타자를 치고, 줄임말과 인터넷 용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스타는 메시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 공개되지 않은 셀카, 음성 메시지, 심지어는 발매되지 않은 노래의 반주를 미리 들려주기까지 한다.


케이팝에서는 스타와 팬의 유대 관계가 팬덤을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다. 프라이빗한 경험을 제공하는 버블의 특성상, 팬은 채팅창에 사적인 얘기까지 할 수 있다. 역시 이 경우에도 스타가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버블은 '스타가 내 메시지를 읽었을 것'이라고 전제해 놓아야만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그래서 내밀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스타에게 공유한 팬은 (스타가 그것을 정말 읽었는지와는 상관없이) 스타와의 더욱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이게 바로 버블이 돈이 되는 이유다. 케이팝의 핵심 메커니즘을 잘 건드린 후 커머스를 연계하면 대개는 돈이 된다. 그중에서도 버블은 케이팝의 문화를 구독 모델과 연결시켜 폭발적인 성과를 거둔 거의 첫 사례라는 점이 인상 깊다.

한 때 유행했던(..) '00과 카톡하기'가 양지화 된 버전이 버블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상을 양지화해 돈을 벌 생각을 한 이 서비스는 그래서 천재적이다.

멤버 한 명과 버블을 하기 위해서는 월 구독료 45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사실 넷플릭스 등등의 구독 서비스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그룹이 다인원 그룹이라면? 4500에 멤버 수를 곱한 만큼의 구독료가 나가게 된다. 물론 그룹으로 결제하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멤버만 골라 결제할 수 있다. 1인권을 구독하면 1명과, 2인권을 사면 2명과, 5인권을 사면 5명과 버블을 할 수 있다. 팬싸처럼 몇백만 원을 쓰지 않아도, 매달 단돈 몇천 원을 투자하면 스타와 대화를 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획사 입장에서도 버블은 손해보지 않는 서비스다. 플랫폼과 기획사 간의 수익 분배가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설령 기획사 측이 적은 비율로 수익을 가져간다고 해도 버블을 해서 나쁠 게 없다.


그 이유로는 우선 기획사가 버블을 통해 소비력과 구매 의사가 있는 팬의 수, 일정 정도 이상의 충성도를 보유한 팬의 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버블은 그룹이 아닌 멤버별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올팬(멤버 모두를 좋아하는 팬을 지칭하는 말)일지언정, 모든 멤버별로 구독료를 내야 한다고 하면 조금 망설일 팬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버블 구독자 수를 토대로 그룹 내에서도 멤버별로 일정 이상의 충성도를 보유한 팬이 얼마나 되는지, 그로 인해 개인 굿즈는 얼마나 제작해야 할지 등의 수량 예측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멤버별 인기는 팬들이 나서서 줄세우기 하기는 퍽 께름칙하지만 멤버 개인 굿즈, 개인 컨텐츠 등을 기획할 때에는 분명 필요한 정보다. 적어도 케이팝 시장에서는 라이트한 팬과 구매 의사가 있는 팬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기획사 입장에서는 버블을 통해 멤버별 팬의 실시간 입덕량과 탈덕량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입덕은 버블 구독 시작, 탈덕은 버블 구독 취소로 바로 수치화할 수 있다. 입덕량과 탈덕량은 유튜브 계정 등과 같은 SNS 팔로워로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팬들은 전에 비해 조금 애정이 식었다고 바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거나 유튜브 채널 구독 취소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버블은 매달 돈이 나가는 유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내 애정이 이전과 같지 않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구독을 중지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구독 모델의 장점이다. 원할 때 가차 없이 해지할 수 있는 것. 따라서 기획사는 어떤 사건, 어떤 활동을 토대로 팬이 늘고 줄었냐 등을 수치화해 따져보기 쉽다.


또한, 그간은 팬싸 후기 등을 토대로 구전설화처럼 전해지던 '팬들에게 잘한다'는 스타의 팬사랑은 버블 효자(버블을 자주 보내는 스타를 일컫는 말), 버블 올출(버블을 매일매일 빠짐없이 보내 '올 출석'했다는 뜻) 등으로 더욱 구체적인 증거를 남기게 된다. 또 팬싸와는 다르게, 더욱더 넓은 범위의 팬들, 즉 버블을 결제한 모든 사람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팬사랑이라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모두가 캡처할 수 있고(물론 지금은 안드로이드에서는 불가능해졌지만), 모두가 확인할 수 있고, 모두에게 '공평한 경험'을 제공한다. '공평한 경험'케이팝 팬덤 내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소수만이 혜택을 보고 소수만이 누리는 컨텐츠는 팬덤 내에서 좋지 못한 반응을 얻는 것처럼, 케이팝에서는 팬과 스타 사이의 유대 뿐만이 아니라 팬과 팬 사이의 유대감 역시 중요하다.


버블의 근간은 컨텐츠가 아닌 경험을 파는 것이다. 그래서 유출 금지 등의 이유로 스타가 보낸 메시지를 캡처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버블 측의 대응 굉장히 근시안적인 처사. 팬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스타의 버블 메시지와 사진은 팬이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입덕'을 부추기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버블 유출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특정 맛이 궁금할 때 한입 먹어보는 시식, 혹은 화장품을 사기 전 제품력을 테스트해보는 화장품 샘플 같은 것이다. 유입이 굉장히 중요한 팬덤은 버블 유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모든 커뮤니티에 고인물이 생기기 시작하면 정화가 어렵고 분위기 환기가 힘들듯이, 철저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만 맛볼 수 있는 폐쇄적인 서비스는 반드시 나락을 걷는다.


케이팝은 정말이지 모든 분야의 기술력과 노하우, 자본, 인력이 집약된 산업이다. 극도로 고도화된 이 시장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재밌다. 현재의 산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창구가 케이팝인 셈이다.


케이팝은 확실히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장르지만, 그렇다고 음악이나 무대 위 퍼포먼스만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케이팝은 생산 주체와 소비자, 그 모두가 만들어내는 문화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케이팝을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독특한 문화도 케이팝이고, 케이팝 가수의 무대 외 활동도 케이팝이다.


케이팝 판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보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려야 뒤처질 수가 없다. 음악이나 트렌드뿐만이 아니라 사회, 기술, 정치 등 모든 분야의 새로운 뉴스를 민감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장이 케이팝이기도 하다. 그래서 퇴행할 일 없는 이 판이 흥미롭다.






작가의 이전글 '알바생'이라는 말에 담긴 폭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