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때문에 스위스 취리히로 이사온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이미 미국에서 5년 정도 살면서 해외생활을 해본 터라 유럽 생활에 대한 대단한 환상 같은 건 없었다. 대륙은 달라도 비슷한 서구권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유럽은 미국이랑 다를 텐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찾고, 짐을 다 정리하고, 필요한 가구들을 새롭게 사들여 막 정착한 것만 같은 기분을 뽐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벌써 스위스 생활 6개월 차. 미국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사한 후 지금까지 느낀 스위스 생활의 장단점이 있다.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이곳 생활에 더 익숙해져 무뎌지기 전에 내가 느낀 스위스 생활의 새로움 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스위스에 오기 전에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3년 정도 살았었고, 그 전에는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2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그 전에는 주욱 한국에서 생활은 했다. 내가 느낀 장단점의 비교군은 캘리포니아 북가주와 서울에서의 생활이고, 나의 스위스 경험은 취리히 및 근교 도시 거주 경험에 국한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짚고 싶다.
스위스 생활 장점
편리한 대중교통
스위스에 오기 전부터 이미 스위스 대중교통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특히 취리히, 제네바, 베른 등등 도시지역의 대중교통은 정말 잘 발달되어 있어서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도심지 및 근교 지역에서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이는 역시나 대중교통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는 한국의 서울과도 비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울 및 수도권에서도 차 없이 지하철과 버스만으로도 충분히 통근 및 시내 이동은 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서울에서도 직장 생활하며 살아본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대중교통의 편리함 수준이 서울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서울보다 훨씬 더 정거장(버스, 트램, 기차역 모두 포함)의 밀도가 훨씬 촘촘한 편이며 빈도, punctuality (한국말로 하면 정시성?) 면에서 모두 서울의 대중교통 경험을 뛰어넘는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 북가주 지역과 비교하자면 당연히 그 경험의 격차는 더 커진다. 사실 캘리포니아 북가주에서는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해본 적이 없다. 미국은 보통 뉴욕, 시카고 등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만 살기에는 힘든 지역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미국에서는 당연히 차가 있었는데, 취리히 생활을 하면서 차를 가지지 않고도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로 다가온다.
우리 동네 기차역..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기차
유럽여행의 중심
스위스는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인접국가만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가 있고 비행기 두 시간이면 웬만한 유럽 국가들은 거의 모두 방문할 수 있는 환상적인 위치이다. 기차로도 충분히 인근 국가로 여행 가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가족도 스위스에 온 이후에 벌써 스페인과 프랑스에 여행을 다녀왔고 연말에 체코/오스트리아/이탈리아로의 휴가를 계획 중에 있다. 앞으로도 최대한 부지런히 다양한 유럽 국가로 여행을 다녀올 계획인데,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여행 가는 노력과 비용으로 유럽 국가를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캘리포니아 북가주에서도 한두 시간 비행이면 시애틀, 포틀랜드, 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니언, LA, 샌디에이고 지역들을 갈 수 있는데, 모두 훌륭한 여행지이지만 여전히 미국 내 여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위스의 지리적 이점이 주는 유럽여행의 기회가 굉장히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공재
개인/가족 단위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공공재도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스위스 생활의 장점이다. 취리히를 조금만 벗어나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자연은 두말할 것 없고 시내와 근교, 레이크 취리히 주변에 작고 큰 공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여름에는 공원에 있는 연못과 분수부터 레이크 취리히까지 어디든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고 풀밭 위에서는 수영복 비키니를 입고 햇빛을 쐬고 있다. 도시 곳곳에는 식수대가 있어 목도 축일 수 있고 도시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하다. 거주지역에는 어린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놀이터도 잘 구비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놀아주기도 좋다. 취리히나 베른, 바젤, 제네바 같은 대도시 같은 경우는 도시 자체가 훌륭한 관광지이다. 아직 바젤과 제네바에는 가보지 않았으나, 취리히의 도심지와 올드타운은 언제 가도 관광객들이 많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베른은 올드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 지역에 선정된 곳으로, 스위스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이렇게 자주 쉽게 방문해도 괜찮을까(?)라는 황송한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무더운 여름날에 갔었던 취리히 시내의 어느 공원
베른 올드타운 (구시가지)
스위스 생활 단점
비싼 물가 / 외식, 부식비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곳이 어떻게 좋은 점만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생각보다 이곳에서 살면서 느끼는 스위스 생활의 단점들은 매우 많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단연 높은 물가. 특히 외식비가 무척이나 비싼데 밖에서 사 먹는 모든 음식과 음료들이 미국 대비 훨씬 비싸다. 우리 가족 스타일로 캘리포니아에서 한 끼 먹었다 생각되게 외식을 하면 최소 30불, 많게 가면 40불 정도. 웬만해선 50불을 넘지 않는다. (두 명 기준) 나와 아내는 입맛도 취향도 까다롭지 않아서 밥하기 귀찮을 때는 집 근처에 있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자주 사 먹었는데 그럴 때에는 샌드위치 두 개에 음료까지 해서 15불 언저리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취리히는 30프랑 (현재 거의 1프랑 = 1달러) 밑으로는 도저히 둘이서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최저가 외식 초이스인 서브웨이 샌드위치도 이곳에서 사 먹으면 35프랑 정도에 육박하는 고급 식사가 되고, 제대로 된 두 명 기준 한 끼를 먹으려고 하면 넉넉잡고 60-70프랑은 잡아야 한다. 스위스는 팁이 없는 문화이고 미국은 팁이 포함된 가격임에도 외식비의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스타벅스 커피도 이곳은 무척 비싸다. 한국에서도 잘 안 먹었던 스타벅스 커피를 미국에서 정말 자주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아메리카노가 그란데 사이즈를 먹어도 2.8불 정도? 3불 미만으로 먹었었는데, 스위스 스타벅스는 아메리카노 그란데가 6프랑이 넘는다.
식자재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미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싼 것도 아니다. 미국은 다양한 가격대의 식료품 스토어 옵션(Safeway, Trader Joe's, Whole Foods, etc.)이 있어서 싼 곳은 싸고 비싼 곳은 비싼 느낌이었다면, 스위스는 모조리 다 비싼 느낌이랄까?
렌트비는 그나마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에 거의 유일하게 취리히가 더 저렴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물론 다양한 가격대의 옵션이 존재하지만, 같은 가격의 아파트를 두고 취리히 지역과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비교하자면 단연 취리히 지역의 아파트가 더 좋거나 방이 한두 개는 더 많은 것 같다.
한국 커뮤니티의 부족
샌프란시스코 지역과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지는 단점은 바로 한국 커뮤니티의 부재이다.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살면서 한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살 때는 주변에 한국 사람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길가다가 한국인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는 길거리에서 혹은 어딘가에서 랜덤 하게 한국인을 마주친 기억은 여행객을 빼면 없었던 것 같다. 더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한국 마트가 거의 없고 한국 음식점이 너무 없다는 것.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살 때는 일이 주에 한 번씩은 무조건 한국 마트를 가서 장을 봐왔었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한국 음식점에서 외식을 했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는 한국 음식점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지나가다 한두 번 한국 음식점을 본 적은 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 차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쌀도 사야 하고 김치도 사야 하니 가는 이곳의 한인 마트는 없는 것도 많고 미국과 비교했을 때 가격도 무척 비싸다.
공공장소 흡연문화
나와 아내가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공공장소 및 길거리 흡연문화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흡연을 하는 것일까? 한국과 미국에서는 거의 맡아볼 수 없었던 담배 냄새가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간접흡연이 쉬운 환경은 결코 선호받지 못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이곳은 심지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모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모마저도 담배를 물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때 아내와 나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의 장단점 리스트를 처음 생각했던 게 약 스위스 생활 3개월 차였던 시기였는데, 6개월 차가 되니까 이것 말고도 다양한 새로운 장단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또 차차 정리해서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