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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트라슈 Nov 16. 2020

다른 사람을 헤아린다는 것

aka 배려

자연스레 몸에 배어서 그게 특별한 행동인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겪은 몇 가지 상황들에서 느낀 생경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하던 중 발견한 공통점은 바로 '엄마'였다. 어릴 때부터 엄격히 지도하셨기 때문에, 늘 일상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돌아보며 새삼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조용히 대화하기

얼마 전 직장 동료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의 일이다. 평소에도 말이 많기로 유명한 그 동료는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료와 상사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다. 그게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나에게만 들릴 정도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마치 그 공간에 우리밖에 없는 듯하게 언성을 높이는 통에.. 그녀의 팔을 잡으며 진정시키고 "내려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했다. 한창 신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재차 진정시키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야기했다.


시국도 시국이거니와, 마치 택시기사님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본인 이야기만 쏟아내는 게 불편했다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에둘러서 "아까는 미안, 기사님 운전하시는데 방해될까봐 그랬어" 그랬더니 뭐 그런 게 방해가 되느냐며 오히려 내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한다. 택시 안에서 그 정도 이야기도 못하냐며..


내가 지나친 건가.. 한참을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었다.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유령 취급하며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 비밀 이야기고 아니고, 대화 내용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그건 그 자리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았다.


어릴 때 엄마는 택시나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시키셨다. 기사님이 질문을 하면 필요한 답변을 하셨지만, 우리가 떠드는 것은 엄격히 타이르셨다. 그래서 다 커서도 대중교통 안에서는 전화가 오면 짧게 단답식으로 답변하고 끊고, 내려서 다시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런 상황을 접하니 삶의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음식물을 먹으면서 다른 매장에 들어가지 않기

어릴 때 우리 집 앞 상가에는 지금은 없어진 크라운베이커리란 체인점 빵집이 있었다. 요즘은 동네마다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가 많지만 당시엔 크라운베이커리가 많았다. (적고 보니 추억돋..) 가족끼리 외식한 날이면 어김없이 크라운베이커리에 들려 먹던 달달한 밀크셰이크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크라운베이커리 바로 맞은편엔 아파트 이름을 딴 서점이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크라운베이커리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남매들은 서점 구경을 하는 게 정례 코스였다. 그럴 때 엄마가 늘 주의를 주었던 것은 먹던 밀크셰이크는 다 먹고 서점에 들어가는 것. 깜박하고 손에 들고 들어갔다가 엄마한테 이끌려 다시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평소 부모님과 친분이 있던 서점 사장님은 한사코 괜찮다며 만류하셨지만 엄마는 우리가 밀크셰이크를 다 먹고 컵을 버리는 것 까지 확인하고 서점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호떡이나 핫도그 같은 길거리 음식은 길을 걸어 다니며 먹기도 했지만, 그것을 먹으며 다른 매장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추운 겨울에도 꼭 다 먹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주말 저녁 동네 빵집에 들려 빵을 고르던 중,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딸들과 아빠가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바로 옆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막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들어왔다. 뒤 이어 아이들의 엄마도 들어왔는데 방역에 민감한 시국인지라 그 가족과 거리를 두며 서둘러 빵을 골랐다.


그때 한쪽 코너에서 아이들이 어색하게 두리번거렸고, 아이들이 비켜난 후 그쪽을 지나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서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계산대로 갔는데 간발의 차로 그 가족의 뒤에 서게 되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한 건.. 그 아빠의 모습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한 손에는 빵 봉지를 한 손에는 카드 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엄마와 딸들이 깔깔거리며 서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흘려놓고도 모른척하며 웃고 있는 딸들이나, 아이스크림까지 잡을 손이 없으면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들어달라 할 수 있을 텐데 그걸 굳이 입에 물고 계산하는 아빠의 모습이나.. 말 그대로 '헐..'이었다.  




타인의 노고와 서비스에 감사 표하기

올해 여든일곱인 외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신다. 설 때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추석을 앞두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시면서 엉덩이뼈가 부러지신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으니 15년 가까이 홀로 지내신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면서 많이 약해지셨다.


슬하에 6녀와 1남을 두셨는데 엄마는 각자 사는 게 바빠 외할머니를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요양원은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가족 방문도 금지되었지만 요 근래는 시간을 정해서 한 명씩 짧게 면회가 가능해졌다. 4인 1실의 병실엔 간병인 1명이 24시간 상주했다. 병실엔 다양한 환자가 있었고 특히 치매환자가 많았다. 치매환자들이 밤에 자주 소리를 지르는 통에 간병인은 늘 잠이 부족하다고 했다.


할머니를 돌봐주시는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엄마가 간병인께 작은 음료수 세트를 건넸다. 한사코 거절하시다가 자주 오지 못하는 딸의 고마움이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마지못해 받으셨다. 간병비도 드리는데 굳이 왜 그런 걸 드리냐는 말에 "우리 대신 고생해주시잖아." 라고 하시며 앞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외식하는 단골 갈빗집에 가면 식사가 끝난 후 아빠가 계산하고 있을 때 엄마는 우리가 먹은 접시들을 크기별로 모으고, 수저들도 싹 모아 한 곳에 두고 손 닦은 행주로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그제야 일어서신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가자고 재촉하는 우리들에게 "이 정도만 해 드려도 바쁘게 일하시는 분들 수고를 조금은 덜어드리잖아" 라며 우리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엄마는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식당을 나갈 때는 늘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셨다.


혹자는 돈으로 지불했으니 그 정도 서비스를 누릴 권리는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의 노고를 헤아리는 것, 마음을 헤아리는 것, 타인의 수고와 배려를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은 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어색하게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 평소의 습관으로 자연스러울 때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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