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문 May 18. 2020

특별할 것 없는 동성애자 이상문 씨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5월 초반. 나는 별일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는 알바를 가고, 평일에는 강의를 듣고. 아, 리포트 과제를 급히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기는 했다. 그거 빼면 일상 속에 특별한 일이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람들이 내 일상에 대해 궁금하기 시작해했다. 정확하게는 ‘게이’의 일상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놀랐다. 게이에 대해 집요히 궁금해한 건, 교회 목사님 빼고는 별로 없었거든.

사건은 코로나 19의 새로운 확진자 정보가 공개되고 나서 시작되었다. 그는 클럽을 다녀왔는데, 한 언론에서 ‘게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무려 ‘단독’으로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걸까? 사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정보다. 그게 게이 클럽이든 뭐든 어떻게 할 것인가? 굳이 그걸 밝히면 국면이 새로워질까? 분명, 국면은 새로워졌다. 모두가 일제히 게이를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누구는 게이들이 클럽에서 노는 방식이 더럽다고 했고, 게이들끼리 만나는 은밀한 장소가 있다는 기사도 쏟아졌다. 성소수자 단체들이 항의를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게이 조롱과 비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성소수자들이 아웃팅의 우려로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클럽과 연이 없는 퀴어들도 사방에서 자기 정보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퀴어 클럽과 상관없는 확진자가 등장하고, 해당 감염의 확산이 굳이 퀴어와 관련 없다는 점이 속속 밝혀졌다. 사람들은 침묵했다. 성적 지향이 아니라 클럽이 문제라는 당연한 명제를 이제야 꺼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퀴어 클럽은 문을 닫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일반’ 클럽 앞에는 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남은 건 성소수자들의 불안, 우리 사회의 관용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다시 확인했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다시 한숨을 쉬고 생각한다. ‘원래 그랬었지’. 과연 원래 그런 사회였다. 퀴어들의 삶을 비난하기 위해 열심히 해부하는 사회. 가만히 있음에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하기 위해 부단히 뛰어다니는 사회. 그런 곳에서 벌써 25년이나 살아왔다.

그래도 희망은 조금씩 생긴다. 한국 사회는 조금씩 진보했다. 퀴어문화축제는 전국적으로 퍼졌고,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성소수자 후보들이 총선에 출마도 했다. 느리지만 적어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사람들의 편견을 어떻게 바꿀까,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특정 세력에게 우리는 뭐라 해야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가장 간단한, 하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부터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건 ‘가시화’다. 내가 퀴어라는 것을 드러내고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퀴어로써의 나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런 이야기다. ‘나는 게이다.’ 이 문장은 쓰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필명을 쓰고 가상의 공간에서 공개하고 있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떨림이 있다. 혹여나 누구나 나에게 게이라는 이유로 오프라인에서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 그리고 사회도 그런 식으로 변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두렵지만 일단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누군가는 특별히 여기지만 나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걸 이야기하면서 그 간극을 매워보자는 거다.

자, 시작하자. 여기 이상문이라는 인간이 있다.


‘평범한’ 이상문씨 (25)

이상문 씨는 아침에 눈을 뜬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씻는다. 그러다가 ‘오늘은 괜찮네’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잠시, 안경을 쓰자마자 본래의 모습이 나오고 무안해진다. 잠깐 웃는다. 거실로 나와 밥을 먹으며 기사를 확인한다. 그러면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그의 아버지가 ‘밥 먹으면서 휴대폰 보지 마라’, ‘일찍 일어나라’와 같은 말을 하고 이상문 씨는 짧게 대응한다.

밥을 먹어 속이 든든해진 이상문 씨는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를 켠다. 아직 수업까지는 10분 남았다. SNS에서 여러 소식들을 확인한다, 좋아요와 공유는 필수다. 그러다 원격 강의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수업을 듣는다. 개강 이후 한 번도 학교에서 본 적 없는 교수님이지만 그래도 얼굴은 익숙하다. 아이패드로 한참 필기를 하다 보니 수업이 끝났다. 옷을 갈아입고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한다.

버스를 타고 친구 집 근처로 향한다. 친구 집 주변은 깔끔하게 거리가 정돈되어 있어서 만나기에는 참 좋은 곳이었다. 이상문 씨는 마스크를 낀 친구와 만났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상문 씨에게는 소중한 친구다. 더 이상 안 보다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아 이번에 한 번 보기로 했다. 그들은 뭘 먹을지 고민하다, 주변에 광고로 유명한 무한리필 갈빗집에 간다.

이상문 씨는 갈비를 굽는다. 친구는 찌개를 시킨다. 그렇게 세팅이 완료되자 그들은 카톡에서 하던 대화를 현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한다. 좀 더 깊은 고민이 서로 오가고, 서로 후련해진다. 그들은 평소대로 더치페이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근처 카페로 간다. 오늘 이상문 씨는 기분이 좋다. 기꺼이 친구의 커피값을 낸다. 친구도 좋아한다.

카페에서 좀 더 이야기하다가 둘은 헤어진다. 이상문 씨는 그 카페에 남아 과제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는 이번에 N번방 관련 리포트를 써야만 한다. 여러 기사를 찾아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한참을 그리 작성하다 보니 오후 8시가 넘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린다. 근처에 중국집이 눈에 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이다. 이상문 씨는 그곳에 들어가서 짜장면을 먹는다.

집에 돌아오니 다들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이상문 씨는 그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씻는다. 그는 자기 방 안에서 리포트를 마저 쓰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눕는다. 다시 SNS를 확인하고, 유튜브를 본다. 오늘도 일찍 자기는 글렀다면서 푸념하지만 재밌는 건 그런 시간에 해야 제일 재밌는 법이다. 그러다 벌써 새벽 2시를 향해가는 시간을 보며 황급히 잠을 청한다. 그렇게 이상문 씨의 ‘일상’이 끝난다.

이상이다. 퀴어라고 괴이한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어떤 변태적인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어쩌다 원나잇의 인연을 맺거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사회에서 ‘표준’으로 여겨지는 이성애자들도 하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특별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그때’ 뿐이다. 퀴어들도 그 순간만이 특별할 뿐이지, 그 이외에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그저 어느 이성애자 남성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남성’을 이야기한다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전혀 특별하지 않다. 이제 편견의 장막을 거두고 사안을 보자. 전혀 다를 것 없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옆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비난이 가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다른 특정 게이들의 삶과 연관 지어서 일체화되어야 하고,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던가.

나는 그냥 평범한 한국인 중 한 명이다. 그저 남성을 좋아할 뿐이다. 이제 그걸 이유로 특별히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그러고 싶다면 내가 차은우 같은 잘생긴 남자와 연애하기를 간절히 기원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당신이 이상형과 만나서 살아가기를 역시 성당 한 구석에 앉아 기도하겠다.

이성애자인 당신들과 나의 간극은 이제 이 정도의 해명으로 충분히 매워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저 그런 게이의 삶이 그걸 이해시켜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 비난은 그만하자. 나를 포함한 다른 퀴어들 모두 편하게 살게 해 달라. 단지 그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조이는 되고 조민 씨는 안 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