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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지

나와 넌 다르니까.






얼마 전 우연히 딸아이 초등학교 때 친구 엄마를 만났어요. 일찍이 결혼한 그녀에게는 E대를 나와 대형병원에 간호사로 있는 딸아이가 있고 늦게 본 아들아이는 S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시키고 있죠. 전 그녀와 차를 마시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자꾸만 위축되었고 우리 집 아이들은 왜 이러냐며 혼자 신세한탄을 했죠.

그러다 끊어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저의 감정이 지하세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요. 그리고 2년 만에 우연히 만난 그녀는 여전히 아들아이는 전교 1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집 근처에 유명한 자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신에 유리한 일반고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고민 중에 있다며 헤어지는 말미에 차 한잔 하자고 연락하라는 거예요.

집에 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러래요.

이제 그만 혼자 있고 사람도 만나고 하라면서요.

전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딸아이를 제가 또 흔들어 놓을까 봐서요.

남편은 넌 왜 그렇게 앞뒤를 재가면서 힘들 게 사냐고 해요. 근데요. 이런 성격인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는 건 어떨까요?

나를 인정해 주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 수 있지, 하고 있는 그대로 봐 주라는 거였거든요.

잠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곱씹고 보니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는 내신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챙겨보는 딸아이와 수시로 카톡창을 확인하는 하는 통에 핸드폰을 놓지 않고 사는 아들아이 가요.

'나도 그랬지. 나도 놀고 싶었고 친구랑 밤늦게까지 수다 떨고 싶었지' 하면서요.

생각해보니 저는 어린 시절 힘듦이 있어도 부모와 적절히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늦은 밤까지 음악 듣고 글 쓰며 혼자 풀어내려고 했지요. 그래서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관심을 주려고 했던 것이 사랑이 아닌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아이들은 나름의 해석대로 잘 지내고 있는데 말이죠.

한 예능 프로에서 아등바등하며 힘든 세상을 살아온 부모님 세대가 느지막이 고집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걸 젊은 사람들이 이해해줘야 한다는 80대의 출연자 말에 60대 남자 배우는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부모가 지나왔던 외로운 시간들을 똑같이 홀로 견디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더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  한마디 들었다고 해서 내가 당장 아이들을 이해한다는  모순일 테고 내가 듣고 싶은 말대로 행동하려 해요.

그럴 수 있지,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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