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선 - 산다는 건 뭘까?]를 읽고
“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날마다 조금씩 완성을 쌓으면 돼.
-본문 중에서
산다는 건...
산다는 건 뭘까?
산다는 건 숨을 쉬는 거야.
코에 숨이 들락날락하고
가슴에 손을 대면
심장이 둥둥둥 쿵쿵쿵.
누군가 안에서 북을 치는 것 같지?
산다는 건 뭘까?
산다는 건 움직이는 거야.
팔을 휘휘 흔들며 걷기도 하고 펄쩍 뛰기도 해.
걸으면서도 생각도 꼼지락꼼지락
마음도 꼼지락꼼지락.
햇살이 콧등에 내려앉고 바람이 귓가에 살랑거려.
산다는 건 뭘까?
산다는 건 뭔가를 쌓아 가는 거야.
추억을 쌓고
그림 실력도 쌓고
친구와는 우정도 쌓고
믿음도 쌓고
자신감도 쌓고,
무언가를 쌓는 까닭은
소망이 있어서야.
간직하고 싶은 소망
채우고 싶은 소망
나아가고 싶은 소망
완성하고 싶은 소망.
산다는 건 어제와 오늘을 잇고
오늘과 내일을 이어 가는 거야.
내일과 십 년 후, 이십 년 후 멀리까지.
순간순간을 이어 일평생을 만드는 거지.
숲에 길을 내는 것처럼
아무도 안 가 본 길을 처음 내가 가는 것처럼.
누구나 자기의 일평생이 있어.
참새에게도 일평생, 강아지에게도 일평생,
하루살이에게도 일평생, 매미에게도 일평생.
길고 짧은 건 중요하지 않아.
얼마만큼 무언가를 쌓았는지가 중요해.
우리가 계속해서 살 수 없다는 건 알지?
지금 살아 있다면 그 끝은 죽음이야.
버스가 종점에서 멈추는 것처럼
잠잘 시간이 되면 하루 일을 마치고
눈을 감는 것처럼.
죽음을 맞기 전까지만
우리는 살아 있어.
아직은 하루의 햇빛이 가득하고
버스는 여전히 달리고 있어.
그러니까 웃어야 해.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아, 정말 아름답구나!
살아 있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이 세상 사는 거
때론 힘들어.
개미에게도 힘들고
새끼 고양이에게도 힘들고
어린 참새들에게도 힘들 때가 있지.
소나기가 퍼붓고
천둥 번개가 칠 때도 있잖아
찬 바람이 등을 떠밀고
세상이 뒤바뀐 것처럼 눈앞이 캄캄할 때
어떻게 할까.
기다려.
잠시 피해 있는 거지.
먹구름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천둥 번개한테 항의할 수는 없으니까.
그럴 땐 잠시 물러서 있어.
언젠가는 지나가거든.
하늘은 다시 맑아지고
마음도 맑아지고
운이 좋으면 무지개를 볼 수 있어.
피할 곳이 없다고?
아무 데도 없다고?
그때는 이런 상상을 해.
구름 두 마리가 물총 싸움을 하는 거라고.
투명 거인이 슬픈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우는 거라고
하늘님이 물을 틀어 놓고는 깜박 잊고 낮잠을
주무시는 거라고.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지어 봐.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재미있다 하겠지?
어, 이제 소나기가 그쳤다!
너무 일찍 죽는 생명들도 있어.
한창 젊을 때,
아니 이제 막살기 시작했을 때 죽기도 해.
죽고 싶지 않은데
정말 살고 싶은데
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꺾이고 말아.
개미도 새끼 고양이도 어린 참새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그래도 태어난 게 더 나아.
하루밖에 못 살았어도
남들처럼 오래 살지 못했어도
태어나서 행운인 거야.
엄마 품에 푹 안겼을 테고
아빠와 눈을 맞추었을 테니까.
세상에 너의 존재를 알렸고
지구의 바람, 우주의 별, 기쁨과 슬픔들.
뭔가 한 가지라도 네 손으로 만진 것이 있을 테니까.
뭔가 한 가지라도 네 마음에 담은 것이 있을 테니까.
산다는 건 너의 시간을 즐기는 거야.
너의 시간을 네가 원하는 색으로 물들이는 거야.
그걸로 너의 일평생.
너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거지.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날마다 조금씩 완성을 쌓으면 돼.
오늘의 완성이 내일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아무도 안 가 본 곳에 너의 길이 나면서
그렇게 너는 살아가는 거야.
어때, 오늘 하루 멋지게 완성해 볼까?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집 앞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찾아요. 이런저런 그림책을 마구 꺼내 읽다 보면 거짓말같이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눈부신 햇살을 받을 때의 기분처럼 내 안에 모든 것도 새하야지는 걸 느끼 거든요. 짧은 글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것 같고요.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이 있었어요.
'산다는 건?' 동화책 제목이 이렇게 심오할 수가 있나 싶으면서 단박에 꺼내 읽었죠. 요즘 이유 없이 울적하고 내 안에 점철된 고통스러운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던 찰나였거든요. 책을 다 읽고 나서 깨달은 건 삶은 유한하고 단순하단 거였어요. 걷고 싶을 땐 걸으면 되고 먹고 싶을 땐 먹으면 된다는 일종의 순리라는 거죠.
얼마 전 이웃님께서 올려 주신 일력이 생각나요.
삶도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것이 소중해진다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자문해 봤어요.
그럼 넌 산다는 건 뭐라고 생각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무언가를 염원하지도 말고 언제나 한 번만 주어지는 이 시간을 무람없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화책은 언제나 많은 글도 많은 생각도 필요 없어요.
그림만으로도 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거든요.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는 일도 있지만
가끔은 말이 아닌 무언의 그림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눈물 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