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며드는 기쁜 우리 젊은 날
함께하는 기쁨에 눈을 뜨고 일상은 더 안정적인 동시에 풍성해졌다. 여태껏 알지 못했던 유희를 알게 된 사람처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기쁜 젊은 날을 기쁜 우리 젊은 날로 만들어간다.
겨울을 무척 좋아하는 나지만 요즘은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 날을 조금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제한되다 보니, 따뜻한 햇빛을 충분히 맞으며 가볍게 산책을 즐기고도 싶고, 꽃구경을 가고도 싶고, 탁 트인 테라스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도 싶다. 공원에서 피크닉도 하고 싶고, 온통 초록으로 물든 풍경을 바라보며 생기를 느끼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설레며 봄을 애타게 기다린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는 지금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의 리스트를 계절별로 쌓아두고 있다. 겨울에도 이미 많은 것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과 처음 맞는 새로운 계절에 함께하고 싶은 풍경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그리고 있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당연히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을 전제함에도,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하는 기쁨'을 나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연애를 그렇게 많이 했다면서 연애 다 허투루 한 거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정말 허투루 했던 걸까, 매번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그 최선에 '내 일상을 공유하고 상대를 기꺼이 내 일상의 바운더리 안에 받아들인다'는 전제는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나에게는 나름의 법칙이 생겼던 것 같은데, 연애를 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에 하는 활동은 대체로 반드시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그 말인즉슨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넷플릭스를 보고 같이 게임을 하고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고 등등, 무엇이든 '데이트'라는 목적 아래 같은 행위를 함께 하는 것이 내가 연애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내가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절대로 상대방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내가 상대방과 공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혼자 해야만 할 때 나는 상대방이 곁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고,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면 나는 마지못해 함께 있으며 불편함 또는 짜증을 느끼거나 혹은 정중히 시간 내기를 거절하곤 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고, 상대방도 혼자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혼자 있어도 좋았다. 그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을 고수했다. 각자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내가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이 당연한 것 같던 단순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쓰고 있는 원고의 초안을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주말에 데이트를 할 거라고 서로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에 넌지시 상대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나 이번 일요일엔 오후 내내 원고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아. 평일에 거의 쓰지를 못해서, 일요일에 오후 내내 카페에 앉아서 집중해서 한 번 써볼까 해."
상대방이 고민을 하거나 난처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답장이 온다. "그럼 같이 카페에 갈까? 나는 읽을 책을 가져갈게."
이전의 나였다면 불편했을 상황이지만,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반응이 다행스럽고 반갑다. 평일에 서로 바쁘고 일정이 엇갈려서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요일마저 나의 사정 때문에 만나지 못하면 조금 우울해질 뻔했다. 나는 기쁘게 그러자고 답을 하고서 잠깐 멈칫 생각을 한다. 나 혼자 집중해서 뭔가를 해야 할 때 남자친구가 옆에 있어서 좋은 적이 없었는데, 괜찮을까. 괜찮겠지.
한껏 들떠서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에 들어선다. 심사숙고해서 안전하게 고른 카페는 내가 예전에 지인과 우연히 들렀다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의 나무를 쓴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비스듬히 드는 햇살과 여유로운 공간 활용이 마음에 드는 곳. 카페의 뒷문으로 들어섰는데 앞문으로 남자친구가 들어온다. 따스한 공간에 나와 동시에 들어서는 그를 보자마자 기분이 환해진다. 원고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빨리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우울함 따위는 희미해진다.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를 고른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한동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고 남자친구는 E북 리더기를 꺼낸다. 나란히 앉아서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을 한다. 옆에 누군가가 있는데도 글쓰기에 집중이 잘 되는 경험은 나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의 곁에서 나의 능률은 최대치에 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남자친구에게 독서의 취미가 있기에 이런 상황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흔쾌히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 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나라면 상대방이 무언가 혼자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바라본 그의 옆얼굴은 아주 진지하고, 나만큼이나 자신의 시간에 몰두해있다. 나의 시선을 느끼고 나를 본 그가 웃는다. 나는 그의 어깨에 잠시 기대며 "이렇게 같이 각자 할 일을 하는 것도 좋구나, "하고 중얼거린다. 그는 같은 공간에서 그는 기타를 치고 나는 책을 읽고, 내가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하는 동안 그는 옆에서 공부를 하거나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고 말한다. 특별히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 말고도,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지 않냐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데이트를 하며 의례 어떤 활동을 함께 하지만, 각자 할 일을 하면서도 함께하는 것이 이토록 좋을 수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는 받아들인다. 역시 이것도 사람 바이 사람, 연애 바이 연애로구나. 나는 같이 무언가를 해야만 기쁜 줄로 알았어.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다는 걸, 혼자보다 함께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는 뭐든지 함께하는 커플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조금 신기하게 바라봤다.(그러니 무려 결혼까지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남자친구랑 어디든 같이 가, 내가 뭘 할 때도 남자친구도 자기 일 하면 되니까 우리 집으로 불러." 그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 내가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잖아, 그리고 혼자 뭘 할 때 누가 있으면 괜히 부담스럽고 서로 불편하지 않나?"하고 말했을 때 친구는 "어차피 못 만나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같이 있고 싶을 땐 같이 있는 거지, 같이 있을 때 불편한 사이면 오래 연애 못하는 거지."하고 답했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친구의 마음과 생활의 방식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함께하는 기쁨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나 부담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나의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각자의 직장 생활과 스케줄로 인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어 혼자 활용할 수 있는 혹은 혼자 활용해야만 하는 시간이 대다수인데, 함께할 수 있을 때, 함께하고 싶을 때 굳이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함께 조용한 카페에 앉아 나는 원고를 쓰고 남자친구는 진지하게 글을 읽거나 투자 종목을 분석하는 풍경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기타를 치고, 함께 오락실에 가서 미친 듯이 게임을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잠이 든다. 혼자의 일을 할 때도 같이 무언가를 할 때도 함께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을 나는 이전에는 어색하게 느꼈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일상의 공유보다는 '함께하는 활동'과 '함께하는 시간'을 '데이트'라는 이름 아래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내 일상과 조금은 분리시켜왔다. 나의 일상을 누군가와 공유해서 온전히 함께하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 아니었다. 이제는 나는 그 기쁨을 안다. 나의 일상의 단면들을 기쁘게 보여줄 수 있으며 부담 없이 나의 삶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가히 축복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