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이 Jan 19. 2022

연애일기 4. 너무 많은 연애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연애일기 4. 너무 많은 연애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노래.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연애와 사랑은 구분되는 개념은 아니나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랑을 원해서 '너무 많은 연애'를 했지만 정작 사랑은 할 수 없었던 사연.


  아티스트 김사월을 좋아한다. 김사월의 노래들은 잔잔하게 다가와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선명하게 각인되는 마성이 있다. 진솔하고 담백한 노랫말에 더해 호소력 있으면서도 덤덤한 김사월의 목소리가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그 파장은 잔잔하고 고요하게, 오래 퍼진다.

  좋아하는 김사월의 노래 중에 2017년 발매된 앨범 <7102>의 타이틀곡 '너무 많은 연애'라는 곡이 있다. 노래 제목이 나오는 후렴구 가사와 2절 가사 일부를 소개한다.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

 

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

집으로 가면 너와 헤어질 테니 집에는 안 갈래

그냥 그 바다에 있을래

그냥 그 공원에 있을래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최근 너무 좋은 연애를 시작하고 보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너무 많은 연애'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적당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혹은 내 마음가짐이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등 결론은 간단하지만 그 속사정은 간단치 않다. 나는 왜 '너무 많은 연애'를 하게 되었나. 어째서 한 사람이 내 곁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그러나 자꾸 희망을 걸고 다시 다른 누군가와 시작을 하고 또 씁쓸한 끝을 맺는 연애의 양상을 반복했을까.

  연애가 끝나고 씁쓸하고 쓸쓸한 기분에 젖을 때면 나는 김사월의 이 노래를 들으며 텅 빈 마음으로 나의 연애의 양상을 되짚곤 했다. 편의점에 들어서서 멍하니 이런저런 간식거리와 캔맥주를 골라담으며 노래를 재생하면 씁쓸함과 초라함은 더할 수 없이 증폭된다. 노래의 도입부에 이런 가사가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선 냉장고 흐르는 소리

창백한 조명 아래 먹을 것들 쓸어 담고

그저 잠들다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 없어"


  이 노래의 화자는 사랑을 원했는데 너무 많은 연애를 했고 그래서 지쳐버린 사람이다. 너무 많은 연애는 섣부른 연애의 시작을 내포한다. 외롭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괜찮겠지만, 외로운 상태에서 행하는 섣부른 연애는 필연적으로 감정 소모와 허탈감을 동반하고 끝나고 나면 전보다 더한 외로움이 남을 뿐이다.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퍼먹다 보면 나오는 결과와 같달까. 이 노래의 화자가 외로웠고 그리고 지쳤다는 것은 노래의 도입부를 들으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냉장고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편의점의 창백한 조명 아래 먹을 것들을 쓸어 담는 밤, 잠들다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것 외에 바라는 게 없는 텅 빈 마음. 분명 건강한 마음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무기력한 외로움에 절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만한 심정 아닌가.

  몇 번의 연애가 비슷한 양상으로 끝나고 지쳐버린 나는 사람만 바뀌고 자꾸만 반복되는 감정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 반복되는 감정이란 이런 것이다. 상대에게도 연애 관계 자체에도 나는 쓸데없는 기대를 품고 싶지 않아서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실망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관계가 진행될수록 나는 결국 이 관계에 대하여, 상대방이 쏟는 애정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하게 된다. 상대는, 혹은 관계의 양상은 나의 기대를 어떤 식으로든 저버린다. 나는 결국 실망한다. 이것이 모든 관계가 종결되는 절차이다. 다만 나의 경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절차에 있어 자꾸 '앞으로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눈 앞이 훤히 보인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판단은 끝난다.

  이 부분에 있어 연애 초기에는 마음을 얻기 위해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굴던, 열정으로 타올라서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퍼붓던, 그러다가 관계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너는 내가 독점한 나의 여자친구라는) 판단이 들면 슬슬 '노멀'한 상태로 빠져들며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남성 전반의 행동 패턴을 탓하지는 않겠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을 초반에 충분히 쏟았다고 판단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분명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애정의 정도가 비슷하게 유지된다고 해도 연애를 시작할 때 마음을 얻기 위해 쏟는 에너지와 열정이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도록 동일하게 유지되는 일은 힘들기에, 완전히 개차반인 경우가 아니라면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노멀'해지는 과정에 있어 노련하고 사소한 스킬들이 필요한데 그런 지혜로운 스킬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적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여전히 너를 이렇게 사랑하며 관심을 두고 있고 너를 당연하게 생각해서 게을러진 게 아니라는 증명을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내는 일이, 그리하여 상대를 안심시키는 일이, 나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남자들에겐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며 변질되는 관계의 양상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겪어온 경험치로 알게 된 '예상되는 행동의 범위'가 자꾸 정확하게 예측되기 때문에 나는 어느 시점에 있어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하여 가령 일반적인 사람들에 있어 6개월 이상의 시간에 걸쳐 진행되어야 할 순진한 기대와 처참한 실망의 절차가 나에게 있어서는 3개월 혹은 6개월 이내로 단축된다. 보류와 타협의 시간도 없다.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마음을 접고 끝낸다는 얘기다. 상대는 이런 결말을 예상하거나 예상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눈치가 빠르거나 특별한 사건 혹은 다툼이 있는 경우 전자, 눈치가 없거나 특별한 사건이 없는 경우 후자.

  그렇게 하나의 연애가 끝나고 나면 나는 한동안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가 몇개월이 지나고 나면 또 이전의 허탈함은 거짓말처럼 잊고 다가오는 인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험을 해보기로 하는 것이다. 이번엔 다르겠지,하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연애를 시작한 적이 많았다.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행동으로 완전하게 증명해내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는다. 혹은 상대에게서 발견된 어떠한 결점들을 내가 기꺼이 품을 만큼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이성 간의 사랑이란 너무도 쉽게 생겨나고 사그라들고 변질되고 잊힌다. 혹은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그런 거라면 나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너무 많은 연애를 거쳤을 뿐.

  어쨌든 연애를 반복할수록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우리가 성애를 기반으로 서로 몸과 마음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독점하며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은, 쉽게 생기고 사그라들고 변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무색해지며 잊힌다는 것. 연애를 거듭할수록 나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도 결국은 흔하디 흔한 남녀 관계, 금세 잊힐 연애와 이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매번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연애만 하면 그만이라고 되새겼다. 연애는 좋은 거니까, 그리고 사랑은 없는 거니까.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한 시절 서로가 필요할 때 곁에 있다가 떠나가도 그걸로 그만이라고, 소위 '쿨병' 걸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렇게 애초에 마음을 반은 닫은 채로 시작하는 연애는 정말 '쿨'했다. 별 대미지 없이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상대방에게 크게 기대하거나 실망하는 일도 없었다. 기대와 실망도 애정과 진정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헤어진 후 목이 메도록 혼자 울며 며칠을 아파하는 청승맞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그렇게 무덤덤하고 별일 아닌 듯 반복되는 이별이, 쉽게 사그라드는 열정이(애초에 사랑은 없었으니 '열정'이라고 해두자), 더 못 견디게 '별로'였다. 가슴 미어지게 마음 아파서 하루하루 여위어 가는 것보다, 며칠을 울며 불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베개가 다 젖도록 울면서 지새는 밤보다, 별일 없이 끝나는 적막한 이별과 또 쉽게 시작하는 별일 아닌 연애가, 이제는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순간에 나는 김사월의 노래를 들으며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랑이었구나. 그래서 자꾸 연애에 뛰어들면서 사랑은 원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속였구나. 상처받기 싫어서, 진심이기 싫어서.'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사랑에 눈머는 것이 두려웠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주인공 안재홍이 말하듯, '사랑은 없는 거니까,'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방패처럼 지니고 살았다. 하지만 또 그가 말하듯, 누가 태어날 때부터 냉소에 빠져 고개를 저으며 '사랑 같은 건 없는 거야,'하면서 태어난 건 또 아니라서, 결국 나도 사랑을 믿고 싶었고 사랑을 원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줄곧 사랑을 원하는 동시에 원하지 않는 모순되고 양립되는 욕망 속에 방어적인 태도로 관계에 임했던 것이다.  


  모든 연애를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연애 속에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믿고 사랑을 했던 적이, 거쳤던 연애가 사랑이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사랑이 실패했다고 해서(사랑이 '성공'하는 건 또 뭔가 싶지만, 내 경우에 '결혼' 같은 사회적 제도에 골인(?)한다고 해서 그걸 사랑의 '성공'으로 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사랑의 목표 지점 같은 것으로 보고 '사랑의 성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결혼'과 '사랑'은 또 별개의 문제이며 오히려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 자체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는데, 같은 종류의 상처를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 사람 마음의 방어 기제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라는 김사월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사람과 사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전제를 믿지 않기로 했고 그렇기에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할수록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지듯이, 운명을 믿지 않으면 정말로 운명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랑을 믿지 않으면 사랑이 불가능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를 그런 상태로 둔 채 방치했다. 다소 아무렇게나 연애를 시작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끝냈다. 영원히 '쿨'하게 연애만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쿨한 연애'에 대한 환상이 나를 지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연애가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하는' 연애가 되는 것이 싫었다. 서로를 속박하고 부담을 지우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가 나를 속박하고 부담 주는 것이 너무도 싫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상대를 속박하고 지겹게 하는 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관계가 그런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면 서서히 마음을 접고 이별을 준비했다. 서로 숨막히게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쿨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연애 관계를 깊이 있게 이어나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여러분이 알듯이 서로 밀도 높고 농도 짙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전제 하에 애정 관계에서 '쿨'하게만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서로 엄청난 정신훈련을 거치거나 혹은 서로에게 일정량 이상의 관심과 기대는 가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서로 기대하고 실망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도 내고, 숨막히게 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책임과 부담을 기꺼이 가질 때, '쿨'하지만은 않지만 인간적이고 정상적이며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는 유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런 일에는 서툴다. 사람들 말대로 '지지고 볶고', 서로 '질리도록' 싸워도 보고, 실망도 하고, 그럼에도 관계를 이어나가고 서로의 결점을 이해하려 노력해보고, 그렇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상처받고 실망하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나,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나. 사랑을 믿지 않고 마음에 사랑을 품지 않고 살아갈 만큼. 수많은 두려움을 걷어내지 못하고 비슷한 양상의 관계를 반복해왔던 지난날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경험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연애의 양상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이제는 그런 시시콜콜한 연애 하지 말자, 이제 제대로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마음 줄 수 없는 연애 같은 건 하지 말자, 하고 각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연인을 만났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지금은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의 연인도 그렇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마음껏 사랑을 하고서 나중에 상처받게 되더라도, 이 관계가 끝나게 되더라도, 그런 결말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런 각오로 사랑하기로 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 상처 받을지 선택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대로 마음 놓고 사랑을 한다. 지금껏 삶에 잔존하던 두려움을 걷어내며 서로를 보면서 후회 없는 사랑을 해보기로 한다. 사랑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상대방도 사랑을 할 줄 아는 이라서, 과거의 경험을 거쳐와 비로소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지금의 나라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이제 마음을 열고 이 관계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방황하던 과거의 나는 이제 안녕. 이제는 제대로 해볼게. 나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충분하도록.  


  여름에 다녀온 김사월의 공연에서 '너무 많은 연애' 라이브를 들었다. 김사월은 편의점에서 먹을 걸 쓸어 담고 너무 많은 연애를 하던 이 노래의 화자가 이제는 사랑을 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참 다정한 멘트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났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계절을 건너와 이 겨울,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좋은 노래들로 쓸쓸하고 서늘한 마음 한 켠을 채워준 아티스트 김사월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행복해진 지금도 나는 김사월의 노래들을 한껏 애정 어린 마음으로 즐겨 듣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일기 3.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