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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고운 Aug 04. 2024

oasis




설마.



  블러 공연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들어 간 오픈카톡 챗방에 쌓인 메시지를 확인하려 한없이 검지손가락으로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다 사진 하나에 멈췄다. 은희다. 미간을 찌푸려가며 사진을 눌러 확대했다. 맨시티 우승 영상이 띄워져 있는 어느 펍에서,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환호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 흰 셔츠를 입고 은테 안경을 쓴 은희가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스크린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맨시티 우승이라. 분명 열기 가득한 펍에선 지금 오아시스 음악이 흘러 나오고 우승을 축하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겠지.



  은희는 대학교 2학년, 가을학기가 시작됐을 때 락 음악 동아리에서 만났다. 이 주에 한 번 자신이 좋아하는 락을 준비해서 함께 듣는 동아리였는데, 베이스에 막 입문한 은희는 여기가 밴드 동아리줄로만 알고 들어 왔다. 은희는 동아리 입회와 동시에 탈퇴를 하려 했으나 신입생도 아닌 2학년인 자신을 받아 준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나중에서야 은희가 알려줬지만 동아리 입회 첫날 가졌던 술자리에서 나와 나눈 대화가 집에 가는 내내 생각나서 웃었다고. 



  은희 덕분에 사라질 위기를 넘긴 동아리 멤버들과 학교 앞 호프집에서 은희의 입회 기념을 핑계삼아 술을 마셨다. 그때 호프집에서 누군가 신청한 oasis "she's electric"이 흘러 나왔고 내가 그걸 따라 부르자 은희는 리암과 노엘 목소리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 물었다. 노엘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노엘 목소리가 좋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싫다고, 마치 존 레논 음악을 듣지만 절대로 존 레논을 좋아한다 말하기 싫은 마음을 아느냐 은희에게 다시 되물었을 때 은희가 한참을 내 얼굴을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 웃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마치 여고생 단짝처럼 가까이 지냈다. 용돈을 아껴서 다섯시간을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홍대에서 인디밴드 공연을 보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를 짜서 씨디로 구워 선물해주거나 서로의 아이팟을 바꿔 듣기도 했다. 우리는 날마다 붙어 다니며 지금 상황에 맞는 책 글귀나 음악을 추천하기도 했다. 한날은 동아리실에서 여자 동기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쭈그려 울고 있을 때 은희가 동아리 선배가 두고간 이현우CD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재생시켰다가 그대로 쫓겨나기도 했다. 우리는 쫓겨나는 와중에도 팔짱을 끼고 복도가 떠나가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아시스. 은희가 꼭 소문자로 적어야한다 힘주어 말했던, 우리를 가깝게 만든 것도, 멀어지게 한 것도 오아시스였다. 대학교 4학년 봄학기가 시작됐을 때, 은희는 드디어 오아시스가 락페 헤드라이너에 선다며 내 손을 마주 잡고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대학원 진학 준비 중이었던 나는 기운 가세 때문에 대학원은커녕 당장 다음 달 자취방 월세마저 내지 못하게 될 상황이니 1학기가 끝나면 당장 학교를 휴학하란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이었다.



  속사정을 털어 놓았으면 달라졌을까. 공부 핑계로 어떻게든 상황을 빠져 나가려했지만 유난히 조르던 은희가 미웠고 서서히 동아리 활동에도 나가지 않게 됐다. 귀찮고 성가시고 슬펐다. 급기야 은희를 보면 도망치기에 이르렀고, 나는 종강과 동시에 본가로 내려와 학교 사람들과는 모두 연락을 끊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다들 가을학기가 시작됐을 무렵,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한동안 들어가지 않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해서 은희의 사진첩을 눌렀다. 락페에서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오아시스 깃발을 흔들고 있는 은희가 보였다. 그 옆에는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하는데, 나여야만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텐데. 이후 가끔씩 오던 은희의 문자 메시지나 부재중 통화가 여러 번 찍히고 잊혀졌을 때 즈음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아리 동기로부터 은희가 서울에 취업했다는 소식만 알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졸업 후 일 년만에 지방공무원에 붙어 도서관에 근무를 하게 됐고 은희도 그렇게 기억에 묻히나 싶었다. 하지만 챗방속의 은희 사진에 마음 한쪽 벽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도서관 자료실에서 누군가 볼륨을 키운 채 자리를 비운 헤드폰에 음악 소리가 흘러 나왔다.




I'm free to say whatever I Whatever I like, if it's wrong or right, it's alright

난 뭐든 자유롭게 말할 거야. 그게 옳든 틀리든 상관없어.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은희는 십사 년 전 그때처럼 아직도 술에 취해 난 뭐든 자유롭게 말할 거라고, 그게 옳든 틀리든 상관없다며 오아시스 노래를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오아시스나 블러는 소문자로 적어야지 마음이 놓인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을까, 카페에선 무슨 책을 읽고, 퇴근 길 서울의 깜박이는 불빛을 보며 지금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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