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오키나와에서 류를 처음 만났다. 열 평 남짓한 소박한 이자카야였다. 직원들 앞에선 모국어를 쓰지 않는 류는 술잔을 한참 노려보며 혼잣말을 뇌까리는 내게 먼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오키나와 북부 작은 마을에서 류의 서툰 한국어를 듣고 있으니 모국어가 더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맥주 세 잔에 하이볼 두 잔을 비웠을 때 류는 자신의 집에 가지 않겠냐 했다. 그때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일은 설명할 길 없이 몸이 먼저 저절로 이끄는 것이 있다 믿는다. 고개를 끄덕이자 류는 가게 마감 때까지 이걸 마시고 있으라며 얼음 잔에 카시스와 우롱을 섞어 건넸다. 술기운이 달아나는 달콤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류의 집까지 도착하기까지 세찬 바람에 우산이 세 번이나 뒤집어졌고 그때마다 나는 와하하하 소리 내며 웃었다. 검은 하늘에 줄지어 길쭉하게 솟아 있는 가로수는 바람에 따라 잎을 떨어트리며 정신없이 움직였다.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단층 주택이었다. 혼자 살기엔 조금 넓지만 그 넓이의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우리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마당을 바라보며 거실 바닥에 쿠션을 깔고 앉았다. 류는 냉장고를 살피더니 순식간에 삶은 풋콩과 함께 고야를 볶은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내가 이 생소한 요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한국에서는 여주라고 부른다고, 여름철에 여주를 먹긴 하지만 쓴맛 때문에 그다지 한국인들이 선호하진 않는다 설명했다.
고작 열여섯이었어. 류는 한국에서 초등교육까지 받고 일본인 어머니를 따라 오키나와에 거주하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재혼을 하고 일본 본토로 떠나고 열여섯 살 때부터 류 혼자 여기 남게 되었다고. 왜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았냐 물으니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을 거라고, 내가 그곳에 따라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류, 나는 엄마를 구하지 못했어. 나는 지금 내 삶이 명멸하다 곧 사라질 것 같다고, 얕은 숨을 헐떡이며 깜박이는 전구 같다고. 슬픔이 저만치 물러나야지만 스스로를 제대로 깨끗하게 볼 수 있을 거만 같은데 슬픔보다 큰 불행이 나를 집어삼켰다고, 류는 오키나와에 혼자 남겨졌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냐고, 나는 입으로 내었는지 아니면 마음속으로만 했는지 너무 취해서 알 수 없었다.
비가 멎었다. 류가 거실 창을 열자 비에 젖은 흙냄새와 어릴 적 초록잎을 세로로 주욱 뜯었을 때 나던 풀냄새가 훅 끼쳤다. 비를 피해 숨어 있던 풀벌레들이 하나 둘 나타나 찌르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감각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순간 내 입술에 류의 입술이 닿았다. 키스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얼음을 입안에서 굴려 먹던 입술의 차가운 감각과 고야의 쌉쌀한 맛이 입술 위에 남았다. 류인지 엄마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 가자.
류가 쥐고 있던 컵의 마지막 얼음조각이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