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멋진 '여자' 형사 반장
박미옥 작가 : 「형사 박미옥」
얼마 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티브이를 보았는데 형사로 보이는 여성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았지만 20년 전에 봤던 얼굴이라 기억이 가물했습니다. 다만 정확히 외우고 있었던 ‘박미옥’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기억하던 반장님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벅차올랐습니다.
20년 전 제가 성폭력전문상담원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을 공부할 때 반장님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와서 강의를 해주셨죠. 당시 비영리단체에서 진행하는 강의에 공무원인 경찰이 와서 강의를 ‘해준다’는 것이 전 참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시간과 노력에 맞는 강의료를 지급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활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반장님 관할 경찰서에서 성폭력 사건이 있었고, 피해자와 조사를 위해 방문했었습니다. 강사가 아닌 형사 반장으로 만나는 형사님을 보고 저는 눈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반장님의 큰 키(키가 170은 되어야 경찰을 할 수 있군), 쩌렁한 목소리(이것이 사무실에서 대화형 목소리인가), 형사들을 지휘하는 직장 상사 반장님의 모습이 ‘멋있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18세 청소녀로 아르바이트하던 만화방 일이 끝나고 사장이 술을 한잔하자고 해서 술을 했고, 이후 모텔로 끌려갔다가 풀려났습니다. 피해자는 끌려갔던 모텔을 기억하지 못했고 우린 반장님과 같이 경찰 승합차를 타고 모텔촌을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몇 가지 가지고 있던 기억과 발품으로 그 모텔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텔을 찾는 통에 조사를 마치지 못했고 우린 내일 조사를 할지, 저녁을 먹고 할지 묻는 반장님 질문에 저녁을 택했습니다. 동그란 쟁반에 담겨있었던 김치찌개를 참 맛나게 먹고, 피해자와 저는 조사가 힘들면서도 뭔지 모르게 재밌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저희 조사 중에 급하게 잡혀 온 다른 사건의 가해자를 조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반장님이 우리 사건의 가해자도 저렇게 혼내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피해자에게는 잘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고, 가게 문을 잠그고 술을 먹인 사장이 잘못이라고, 힘들지 않냐고 따뜻하게 물어봐줬던 형사님이 가해자를 혼내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저렇게 단단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 제게 관심 갖고 질문해 주는 반장님을 보면서 저는 사실 설레었습니다. 처음 경찰이 되고 여형사가 반장이 되고 부하들로부터 인정받기까지의 일들을 담담하게 얘기해 주셨죠. 그리고 어떤 얘기 끝에 제게 ‘형사 해보지 그래요? 형사 하면 잘할 것 같아요.’ 그랬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지 큰 칭찬과 격려로 들렸습니다.
반장님, 반장님이 최근에 내신 글을 찾아 읽었습니다. 사건 하나하나마다 어떤 마음으로 하셨을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대하셨을지 저는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형사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하였던 저는 그와 조금은 비슷한 면이 있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장님, 저는 반장님이 다 멋지지만 사건을 하면서 형사일을 더 잘하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프로파일링을 계속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멋짐’을 떠올렸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할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을 다음 사건에서는 조금 더 채우고 싶은 그 마음으로 힘든 와중에도 공부했을 테죠. 가해자에게 벌을 주면서도 가슴이 식지 않는 온도를 그렇게 유지하셨을 테죠.
언젠가 반장님이 제주도에 열었다는 서점을 깜짝 방문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반가울지 생각만으로 벅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