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 선생님께
호원초등학교 교사였던, 교사이고 싶었던
선생님, 하늘에서 이제 편안하신가요? 정말 드디어, 이제야 끝이 났네요. 더는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거죠? 오늘도 기사에 선생님 얼굴이 나왔는데 차마 보기가 힘드네요. 화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어떤 마음을 표현해도 선생님이 가졌던 그 울분, 억울함에 견줄 수가 없어서 차마 화가 난다는 말을 표현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막막하고 힘드셨어요.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셨어요. 학부모에게 200만 원 월급에서 매달 50만 원씩 8개월을 보내셨다는 말을 듣고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학부모에게 어떤 서류 한 장 제대로 쓰지 않고 그 돈을 다 주셨겠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직장에서 일어난 일인데 교사 개인이 학부모에게 돈을 줘야 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교사 개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이 파렴치한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하셨어요. 그리고 또다시 돈을 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셨을 것 같습니다.
그 초조함, 저는 초조함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도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저는 기관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상담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일을 합니다. 성희롱으로 인정되면 가해자가 징계받아 해임, 정직, 감봉 등의 조치를 받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있습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제게 앙심을 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해자가 저에게 욕하거나 억지를 피우고 나쁜 말을 하는 경우가 있고, 그 경우는 참을 수 있습니다. 일면 예견된 일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피해자가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제게 하는 어떤 말들은 더욱 참기가 힘듭니다.
제가 퇴근한 아무런 시간에 전화와 카카오톡을 합니다. 퇴근한 이후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우리 회사는 직원끼리는 번호가 공개되어 있고, 심리적으로 힘든 피해자는 부득이하게 상담자가 번호를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기 혹은 돌발 상황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 성희롱 사건이 사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소문이 난다거나 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면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관리자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절대 번호를 알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실제 일을 하다 보면 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늦은 밤, 주말 제가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누가 전화했는지 알고, 카카오톡을 당장 확인하지 않더라도 잠금화면에 뜬 메시지만 봐도 머리에 긴장이 치고 올라오는 날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의 뒤를 잡고 하나하나 캐묻는 피해자를 대하면서 피해자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잠들기 힘든 밤이 있습니다. 이런 날들을 선생님은 수년을 견디신 거죠.
내가 처음에 관계를 잘못 설정했나, 내가 어떤 빌미를 준 건 아닐까,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아, 녹음한 걸 다시 들어볼까? 내가 진짜 그렇게 말했나?-이런 생각이 드는 날들을 선생님은 기약 없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냥 그냥 당하고 사셨을 테죠. 아이의 부모라는 이유로 선생님은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을 테죠. 아이가 다쳤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어떤 말도 하기 힘드셨겠죠.
선생님, 저는 그냥 그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닌 어떤 노련한 사람이었더라도 당해낼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생님 혼자 그 일을 오롯이 당하게 했던, 파렴치한 민원인들로부터 당하는 선생님을 모르는 체한 학교 관리자들의 잘못입니다. 선생님의 잘못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냥,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