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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e Oct 14. 2020

영혼을 위한 ㅅㅂ거리기

직장생활에서 구원받기


지난 토요일은 오전 내내 기분이 구렸다.

 금요일 저녁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실컷 웃고 즐겼고, 토요일 오후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원데이 클래스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리적 시간 상으로 '기분 좋음'과 '기분 좋음'의 사이에 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어나면서부터 기분이 별로였고, 늘 사랑하는 주말의 라면 런치를 가지면서도 정서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왤까. 기분이란 건 논리적이지 않다. 평소보다 낮은 실내 온도 때문에 기분이 다운되기도 하고, 강아지가 모닝 인사를 건성으로 해줬다고 세상 버림받은냥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쾌한 마음을 달래려 괜스레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구린 기분을 톺아보려니 추적의 끝에서 시발스런 얼굴이 하나 떠오른다.


 일적으로 배울 점이 있긴 하지만, 오지랖이 too much 한 우리 팀장님이 금요일 퇴근 직전에 준 메시지가 문제다. 퇴근하기 전 화장실이 좀 급해서 다리를 떨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마치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다리를 떨지 말라고 지적했다. '좀 떨어도 되지 않아요?'라고 대신 되받아쳐주는 옆 자리 주임님에게, 팀장님은 고상하고 우아한 말투로 다리를 떠는 행위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깎아먹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민망할까 봐 계속 대신 변명해주는 주임님 덕에 뜻밖의 '다리 떠는 행위'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불퉁한 얼굴로 관망하다 '저 화장실이 급해서 떨었어요.'라고 말하니 그제야 팀장님이 '말하지 그랬어? 미안해. 계속 떨어.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한테 내가 실수했네.' 라며 큰 목소리로 쿨하고 유쾌한 척, 온 주위에 요밍아웃을 시켜준다. 짧은 대화였지만, 저 행간에 얼마나 많은 시발스러움이 담겼는가. 일적으로만 상사이면 됐지, 왜 인생적으로 나에게 저렇게 교만하게 굴 수 있는 포지션까지 슬그머니 차지하는 건가. 비난하고 싶은 포인트가 한 두 개가 아니다.



ㅅㅂ거림으로 ㅅㅂ을 풀어낸다.

원래 존재적으로 그리 존경하지 않는 상사이기에 크게 실망하거나 마음 상할 것도 없다. 우리는 저스트 일하는 사이. 서운하고 상처 받는 건 사랑하는 관계에서나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일적으로나 밀접하게 엮여있는 사이이고, 나는 그녀의 팀원이다. 업무로만 무언가를 배우고 서비스해주는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녀의 나이와 직책은 우리 관계의 인격성과 친밀함, 신뢰를 견인하지 못한다. 나는 그녀를 존재로 신뢰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 범위를 넘은 것은 그녀가 얼마나 미숙한 지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성숙하게 경계를 설정하고 지킨다. 그녀가 멋대로 넘어와서 뿌린 메시지는, 애초에 기반되지 않은 무형의 관계 위에 남겨졌다.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가볍고 얕게 흩어진다. 나의 존재의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쳐내자. 밀어내자. 잊자. 해본다.


하지만 이 시발시러움은 아직 풀리지 않고 주말의 끝까지 마음 속 깊이 침전되고 있다. 얼른 자야 컨디션이 좋을 테고, 돌아오는 한 주도 행복할 테지만 내일 출근해서 그 시발을 마주할 걸 생각하니 짜증이 나서 잠이 안 온다. 시발스러움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순간의 상한 기분 외에도 무례함에 대한 분은 쉬이 안 풀린다. 그러니 나를 위해 시발을 외쳐야 한다. 내 영혼아 살자! 살자!!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나의 나됨을 지키자

나는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지 않는다. 혹 습관적으로 떤다 하더라도, 내가 좋은 사람인 것이 그것 때문에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인 것은 내 존재 본연의 성질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 사람들이 '지켜보고' 평가하는 어떤 것이 나를 결정할 순 없다.  


물론 다수와 어울려 사회생활을 할 때, 적당히 '사회화'된 인격이 갖춘 어떤 매너와 어떤 캐릭터는 중요할 테다. 하지만 그 속에서 획일화되고 무례한 저평가가 일어난다해도 위축되지 않고, 영향받지 않으련다.


무엇보다 나는 타인의 본질을 위협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련다. 이렇게 급습하는 타락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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