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처음 인사 오기 바로 전에 알로에 나무에 꽃이 피었어. 우리 집에 행운이 오려나, 하고 설렜는데 선물처럼 네가 온 거 있지."
결혼하고 세 달쯤 지났을까, 처음 맞는 명절에 방문한 시댁에서 어머님이 내 손을 끌고 베란다로 나가셨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커다란 알로에 화분 속 알로에 줄기 끝에 바나나 송이 같은 꽃이 피어있었다. 알로에가 심어져 있는 화분에 클로버도 몇 개 있는데 거기에 네 잎 클로버도 피었다며, 아무래도 우리 아가가 복이 많아 이렇게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고 아이처럼 웃으시던 어머님.
그리고 몇 달 뒤, 남편과 밖에서 한잔 하고 집에 들어와 술이 좀 모자란 느낌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입이 궁금한 거였다. 늦은 밤이라 무거운 안주는 부담스럽기에 에어프라이어에 간단하게 고구마 몇 개를 돌려 먹기로 했다. 그렇게 고구마가 구워질 동안 맥주 한 캔을 비웠고, 부쩍 오른 취기 덕에 부주의해진 나는 결국 고구마를 꺼내다가 그만 손목을 데었다. 당시에는 살짝 화끈거린다는 느낌만 들었기에 오빠 이거 봐! 하고 빨개진 자국을 보며 주며 웃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손목 안쪽에 선명하게 데인 흉터가 죽 그어져 있는 거 아닌가.
며칠 뒤 방문한 시댁에서 그 흉터를 본 어머님께서는 "그런 건 네가 했어야지!" 하고 단박에 남편을 타박하시더니 곧장 베란다로 가서 알로에 줄기 하나를 끊어오셨다. 질긴 겉껍질을 벗겨 투명하고 미끈한 속을 잘게 잘라 거즈에 올린 뒤 환부에 붙여 주시고는, "앞으로는 네가 하지 말고 오빠 시키렴."하고 속삭이셨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려는 우리 손에 들려주신, 꽃이 핀 알로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알로에 화분 하나.
이 녀석이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에 주신 거라 거절하기도 뭐해 덜컥 받아왔지만, 자칭 타칭 연쇄(식물) 살인마인 나는 이렇게 큰 화분은 키워본 적이 없어 슬쩍 겁이 났다. 어머님께서 아끼며 기르시던 알로에인데 죽이면 어쩌나, 나는 쪼만한 선인장도 죽이는 사람인데.
하지만 알로에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살아주고(?) 있다. 정말 알로에의 존재를 잊을 때쯤 물 한번 주는 게 다인데 좁은 화분 안에서 뭘 먹고 저리 쑥쑥 자라는지 날이 갈수록 몸집이 점점 커지는 통에, 얼마 전 마사토를 잔뜩 사다가 큰 화분으로 옮겨주었다. 난생처음 해본 분갈이였다. 인터넷에 '알로에 화분 분갈이'를 검색하고, 흙을 사러 가고, 그 무거운 흙들을 이고 지고 와서 커다란 화분에 순서대로 속을 채우다니. 식물이 있으면 벌레가 꼬인다고 늘 멀리하던 내가 화분 분갈이를 하다니.
나이가 들면 식물이 좋아지고, 길가에 핀 작은 꽃 하나도 그리 기특하고 대견하게 느껴진다던데 나는 그 시기가 꽤(?) 빨리 온 것 같다. 요즘은 아스팔트 사이에 올라온 잡초 한줄기만 봐도 주책맞게 괜히 마음이 찡하다.
부담스러운 증명사진
세상을 살며 어느 하나 당연한 것 없었던 내 곁에도 어느새 함께해주는 생명이 하나 둘 생기더니 이젠 꽤 많아졌다. 약 10년 전, 그 좁디좁은 원룸에서부터 지금까지 내게 체온을 나눠준 우리 집 터줏대감 강아지 A, 늘 가족에게 채찍 대신 당근만 듬뿍 주는 든든한(건강은 덜 든든한) 오빠, 얼마 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산세베리아 화분 하나와 스투키 화분 하나에 어머님의 알로에까지. 이 작은 집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 주어서. 내게 곁을 내주어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