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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Aug 17. 2020

오빠, 나 타투할 거야.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존재들



치킨을 앞에 두고 함께 영화를 시청하던 중, 무심하게 뱉은 내 말에 치킨을 입으로 가져가던 남편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어디에다가요, 어떻게요, 어떤 걸로요, 왜요? 등의 물음이 줄을 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언질 하긴 했었지만 진짜로 마음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가 보다.



"얘기했었잖아요, 우리 강아지 이름으로 할 거야. 평생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몸에 새기는 수 밖에는 없겠어. 샵도 다 알아봤고 이제 날짜만 잡으면 돼요."



강아지 A


그림이 아니라는 말에, 그래도 뜻과 마음을 담은 단어를 새길 거라는 말에 남편은 한결 누그러진 듯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걱정을 했다. 지우기도 어려울 텐데, 많이 아플 텐데, 후회하지 않겠느냐 등등. 하지만 나는 수십 수천 번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린 터라 큰 흔들림은 없었다. 다만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은 시술받을 부위였다. 일단 하기로는 마음을 먹었는데, 어디에 할 것인지를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부위는 발등이었다. 필요시에는 드러내지 않을 수 있으면서 내 눈에는 잘 띄는 곳. 집에 오자마자 양말을 벗어던지고, 멀쩡한 소파를 내버려 두고 꼭 소파 앞에 앉아 생활하는 내게 제일 잘 보이는 부위가 발등이었다. 예뻐 보이기도 했고. 무튼 시술받을 부위를 발등으로 정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약을 잡으려 샵에 연락을 했는데 웬걸. 타투이스트분께서 발등은 쉽게 지워지고 번지는 곳이니 다시 한번 고민해보고 연락 달라고 했다. 발등은 자신이 꼭 만류를 하는 부위라며. 그렇다면 복숭아뼈 안쪽은 어떨까?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를 좋아하는 내게는 나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팔뚝 안쪽은 어떨까. 그래도 역시 나만 볼 수 있는 부위가 나으려나.. 그렇게 또 어영부영 한 달이 흘렀다.




드디어 타투를 받을 위치를 복숭아뼈 안쪽과 아킬레스건 사이로 결정 하고, 다시 샵에 예약 전화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물놀이 2주 전에는 안됩니다. 였다. 아아. 무려 2주 전인데도 안된다니. 별 수 없이 휴가 다녀와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옆에서 "이러다가 또 여름만 지나고 해야지, 하고 점점 미뤄지다가 나중엔 안 할 수도 있겠네요?" 하며 좋아하는 남편을 보고 약이 올랐지만 당장은 별 수가 없었다. 꼭 할 거라고 대꾸하고 씩씩거리며 발 밑을 내려다보니, 내 발치에서 곤히 자고 있는 우리 강아지 A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위로 꼭 닮은 강아지 '공주'가 떠올랐다.





약 10여 년 전.

우리는 아빠가 친구의 친구에게서 얻어온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름은 공주. 공주처럼 너무 예뻐서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정작 말 그대로 예뻐할 줄만 아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강아지 케어는 오롯이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강아지를 묶어놓고 키울 것이 아니라면 당장 도로 데려다주라고 호통을 쳤고, 아빠는 일단 며칠만 묶어놓고 적응이 끝나면 풀어주자고 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강아지를 묶어둔 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나는 아빠와의 갈등(다른 이유의)으로 집을 나오면서 공주를 데리고 나왔다. 몇 평 남짓한 원룸에서 공주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본가에서는 공주를 묶었던 끈이 닿는 반경에는 공주의 방석과 배변판이 있었다. 공주는 때때로 자신의 방석에도 실례를 할 정도로 배변 교육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런 공주를 울타리 안에서 교육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고 덜컥 원룸에 풀어뒀으니 온 집이 공주의 흔적으로 넘쳐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공주를 붙들고 배변 교육을 하고, 친구가 가져다준 홑이불 위에서 둘이 꼭 끌어안고 잠이 들고, 축축한 공주의 소변 위에서 잠이 깨기를 여러 번. 결국 완벽하지는 않지만 약 8할의 적중률을 보이며(조금 많이 쳐준 것 같기도 하다) 공주와 나는 둘이 함께 사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갔다.



원룸을 옮기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남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누나, 공주가 집을 나갔어.


이사 때문에 본가에 공주를 딱 사흘을 맡겼었다. 맡긴 그 날부터 밤 새 나를 기다리듯 현관문 앞에 앉아 울던 공주는 결국 이틀째 되던 날,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할머니 다리 사이를 통과해서 바람처럼 밖으로 달려 나갔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날 비가 참 많이 왔었다. 그 비를 쏟아낸 태풍인, 볼라벤이라는 태풍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처음 며칠은 빗속을 뚫고 반은 실성한 사람처럼 공주를 찾으러 다녔다. 자려고 누우면 눈 앞에서 보고 싶은 얼굴이 어른거린다는 말이 뭔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비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어디서 비는 잘 피하고 있을까. 나만 이렇게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공주에게 정말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밥을 먹는 것도, 웃는 것도 모두 다 공주에게 잘못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공주는 돌아오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나는 조금씩 밥을 먹었고 조금씩 웃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내 강아지 공주는 이제 굳이 떠올려야만 간신히 떠올릴 수 있는 얼굴과 이름이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비슷한 생김새의 강아지를 보면 떠올랐었지만, 지금은 함께 하는 우리 강아지 A가 공주와 많이 닮아서,

이제는 눈이 크고 이마가 동그란 강아지들을 보면 공주보다는 A가 먼저 떠오른다. 공주도 어딘가에서 보살핌을 받고, 많이 사랑받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외면하지 못하고 데려온 유기견이었던 우리 강아지 A. 내가 이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잘 돌봐주면 어딘가에서 공주도 그런 사랑을 받지 않을까. 왜, 나쁜 일을 하면 꼭 돌아온다는 말처럼. 좋은 일을 하면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을까. 기왕 돌아올 거면 모든 행운은 내가 아닌 공주에게로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 우리 강아지 A를 데려왔었다.



공주


이제 내게 남은 공주 사진은 단 세 장뿐이다. 많은 사진이 싸이월드에 있었지만 미처 백업을 못한 사이에 그 사이트는 사라져 버렸다. 공주라는 이름도, 존재도 아주 가끔 떠오른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리고 이제는 나와 함께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를 먹어가며 요즘 자주 잔병치레를 하는 A를 보며 결심했다. 평생 잊지 않게 새겨야겠다고. 그냥 영영 지워지지 않는 도장 찍듯이 쾅, 하고 내 몸에 찍어야겠다고.




아주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공주는 그 날, 채 200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집 앞 도로에서 트럭에 치였다고 했다. 공주의 마지막을 앞집 슈퍼 아저씨가 거둬서 땅에 묻어줬고, 아빠께 소식을 전했다고. 하지만 아빠는 충격받을 나를 생각해, 절대로 이 사실을 내게 전하지 말 것을 동생들에게 단단히 일렀고,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몇 년 뒤에야 알게 되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는 내 다그침에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어디서든 예쁨 받고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렸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한 걸 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언제가 되었건 공주와 A의 이름을 몸에 꼭 새기겠다. 내 눈에 아-주 잘 띄고 잘 지워지지 않는 곳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생각날 수 있게.

이건 겁이 많은 스스로에게 이르는 다짐이기도 하다. 미루지 말고, 휴가도 다녀왔으니 꼭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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