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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Oct 27. 2021

아빠 안녕, 안녕 아들.




임신 8개월에서 9개월 접어들어갈 무렵이었다.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에 언젠간 헤어질 날이 오리라 막연하게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꽤 빨랐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처음엔 믿지 않았고, 서서히 인정했고, 자책하고 후회하다 결국 받아들이는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아빠를 보면 늘 화가 났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병원비를 감당하고 병수발을 들고 있다는 사실도 미치게 싫었다. 아버지 본인이 노력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기에 더 그랬다. 도망가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내가 도망가려 하면 할수록 남은 가족들이 배로 힘들어지는 게 눈에 보였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 다짐했다가도 차마 모질게 외면하지 못해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하는 말 중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그래도 가족인데.”였다. 그놈의 가족.




근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혈연으로 얽힌 관계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한켠에 그에 대한 억울함 비슷한 게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나 지인이야 가는 길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면 멀어지면 그만이고, 언제고 또다시 만나 비슷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지만 가족은 달랐다. 영원히 끊기지 않는 고리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은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기투합해서 이겨내고 끈끈해진다지만 그놈의 어려운 일은 왜 이렇게 자주, 세게 우리 가족을 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릴 때는 우리 가족이 운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중에 제일 운이 없는 아빠가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었고. 하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 보니 글쎄.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원망으로 점철된 관계임에도 불구, 아빠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조그만 빈소에 앉아서 내가 왜 그렇게 이 관계를 힘겨워했나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과거의 원망보다는 앞으로가 더 막막하게 느껴져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황을 바꿀 키는 아빠가 쥐고 있는데, 아무 노력도 않는 아빠의 뒤치다꺼리를 근 30년은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부담스럽고 싫었던 거다. 근데 이렇게 아빠가 떠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키를 정말 아빠가 쥐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애초에 그 열쇠가 여러 개였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냥 한 개라고 믿어버리면 편하니까. 모든 건 아빠 잘못이니까. 그럼 나는 밤에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에게 들어갈 거라고 예상했던 비용의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앞으로 들일 거라고 생각한 시간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진작 아빠에게 들였더라면 내가 지금 여기에 앉아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른 배를 부여잡고 아빠 사진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곤히 잠든 아기 얼굴 위로 웃는 아빠의 모습이 겹친다.

지금 이 후회되는 마음을 고백하면 아빠는 웃으며 괜찮아 인마, 할 텐데 이제는 말할 곳이 없다.

그저 내 안에, 내 몸 어딘가 아빠를 닮은 구석 속에, 또 나를 닮은 이 아기를 구성하는 어딘가에 아빠의 흔적이 있다고 믿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제는 저 하늘에서 나와, 내가 선택한 내 가족들을 지켜달라고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부탁해본다. 염치없지만 그렇게 해달라고 자꾸만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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