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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Sep 05. 2019

이런 결혼기념일도 괜찮아~

우리 둘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

며칠 전에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그동안 결혼기념일에는 여행을 가기도 했고, 외식을 하기도 했고, 서로에게 선물과 이벤트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날 하루만큼은 집에 걸려있는 결혼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기도 했고, 우리가 결혼하던 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다. 그날 남편의 축가가 얼마나 날 감동하게 했는지, 남편이 축가를 부를 때 대조적이던 양가 부모님의 표정, 결혼식 내내 활짝 웃고 있어서 우리 엄마가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그만 좀 웃으라고 했던 일, 20살 이후에 최저를 기록한 나의 몸무게 등...

     

결혼기념일은 부부가 서로를 축하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된 날을 기념하고, 지난날을 함께 추억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그런 날. 그런데 주위를 보면 결혼기념일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 하는 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결혼을 약속한 후에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 이벤트를 해야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도 분위기에 휩쓸려 그랬는지, 오로지 본인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혼 전에 카드마술을 선보이며 소박하게 프러포즈를 했었고, 첫 결혼기념일에 꽃을 사들고 왔고, 나도 그걸 고마워하면서도 당연한 듯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준비한 소소한 이벤트 : 꽃을 내 직장으로 배달시키기도 하고(쑥쓰러우니 이제 하지 말라고 했다~^^),  몰래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던 지난 날들

하지만 결혼기념일은 서로가 함께 축하해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 남편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나름대로 이벤트를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결혼기념일에 내가 직접 준비한 이벤트 : 풍선을 불고, 플랜카드를 주문해서 벽에 걸어두기도 했고, 촛불을 켜고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니, 우리 둘은 이제 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 그리고 올해는 남편이 업무 관련 자격증 공부로 인해 무척이나 바쁜 시기라 여행을 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올해 결혼기념일은 배달음식에 맥주 한잔 마시기로 했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결혼기념일에는 시간이 된다면 함께 여행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둘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것이다. 내가 혹은 남편이 준비한 음식일 수도 있을 거고, 괜찮은 식당일 수도 있고, 배달음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챙기는 소박한 이벤트, 초코릿과 사탕

기념일을 챙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즘은 상업화된 기념일이 너무 많다. 정체불명의 데이(day)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주는 데이(day)는 챙긴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사준 초콜릿을 며칠 동안 행복해하며 아껴 먹는다. 나는 사탕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편이 3월에 사준 사탕 한통을 차에 놔두고 운전 중 출출할 때 먹곤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사탕 한통을 먹는데 꼬박 1년이 걸린다. 그러면 또 사탕을 주는 날이 다가오고, 남편은 또 그 사탕 한 통을 사 온다. 평범한 일상은 초콜릿과 사탕으로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동안 화려한 이벤트와 소소한 이벤트로 기념일을 보내기도 하고,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기념일을 모두 보내면서 내린 결론은 이벤트는 ‘우리의 소중한 날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하는 정도로 기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방이 감동할 만한 화려한 이벤트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때 감동이 더할 것이다. 해마다 그런 이벤트를 한다면 감동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도 않고, 그 감동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념일도 중요하지만 기념일보다 무수히 많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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