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난 창가에는 열개가 조금 넘는 식물들이 있다. 이른 아침의 따스한 빛을 듬뿍 받으라고 뒀는데 아이는 비닐하우스냐고 이제는 그만 식물을 들이라고 나를 감시하고 있다. 이 식물들 중에서 가장 먼저 우리 집에 들어온 식물은 '호야'다. 아이가 5학년 때 학교에서 화분에 작은 호야를 심고 가지고 왔다. 호야라는 이름도 귀엽고 아이가 자기 화분이라며 애지중지 들고 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이 일었던 순간을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더운 여름 바쁘다는 핑계로 창가에 늘어놓기만 했던 화분들을 보니 마른 잎사귀들이 보였다. 게으른 나를 탓하며 말라 노랗게 되어버린 잎사귀들을 정리해 주던 그때 한쪽 귀퉁이에서 분홍빛 작은 꽃무리가 보였다. 뭔가 해서 보니 그렇게 피우기 어렵다는 호야의 가느다란 긴 줄기 끝에 앙증맞고 예쁜 분홍꽃이 핀 것이다.
"얼른 이리 와봐!"아이를 다급하게 불렀더니 아이는 무슨 일이냐고 눈이 커진다.
"이것 봐. 호야 꽃이 폈어!" 아이는 꽃이 폈다는 말에 뛰어왔다.
"내 호야도 꽃을 피우긴 하는구나." 아이도 나도 놀라서 한참을 바라봤다. 호야꽃은 누군가의 말처럼 작은 우주를 닮은 꽃이었다. 별 모양 분홍 꽃잎 안에 다시 하얀색 별모양 꽃잎이 있고 그 안에 또 작은 빨간 별이 있는 듯했다.
호야 꽃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햇수를 세어보니 3년 만에 핀 꽃이다.
"엄마 이럴 때는 소원을 비는 거야." 난데없이 눈을 감고 손을 모아가며 아이가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나도 빌어야지." 나 역시 아이를 흉내 내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고요가 찾아왔다.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무엇을 빌까 여러 생각이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처럼 지나갔다.
'아이의 소원이 이뤄지게 해 주세요.' 소원을 빌고 눈을 떴다.
"엄마는 무슨 소원 빌었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며 기분 좋은 핀잔을 주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 것 같아?" 아이에게 맞춰보라며 장난을 걸었다.
"음... 엄마는 내 소원이 이뤄지라고 빌었을 것 같아." 아이의 대답에 놀란 눈으로 어떻게 알았냐고 말했다.
"어쩐지 엄마는 그 소원을 빌었을 것 같았어."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사춘기 중2와의 대화시간은 이것으로 종료되었다는 듯 유유히 자기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소원을 빌 때도 나 자신보다 아이를 먼저 떠올리는 그런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는 아는 것 같다. 아이의 소원이 뭔지 모르나 내 소원도 그 소원에 한 겹 덧대어졌으니 그 소원이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