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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Jan 28. 2023

손흥민이나 을에게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고향이 어디야? 아버지 어머니 무슨 일 하셔? 집안이 대대로 서울 살았니? 서울이면 어디? 사대문 안? 밖?"


사대문? 사대문이 왜 거기서 나오는지 그때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사대문은 역사책이나 사극에서 보던 말 아닌가?


"아버지는 은퇴하셨고 제 고향은 충청도입니다"

"친척은? 친척 중에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 없고?"

"그건 알아보면...“

"그래, 오늘 잘하고. 다음 루키 들어오라고 해"


면담은 짥게 끝났다. 알 수 없는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외국계 대행사 이사의 입에서 '사대문 안에 사냐'는 질문은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대대로 사대문에 살았는지, 친척이라도 살고 있는지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지 이십 대의 나는 홍이사에게 묻고 싶었다.


자리로 가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려고 ppt를 여는데 문득 Y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은 키, 단정한 단발, 동그란 얼굴, 스마트해 보이는 얇은 안경테 안에서 작지만 웃고 있는 눈, 뭘 먹자거나 뭘 하자고 할 때 늘 이견없이 따르는 무던한 스타일. 하지만 정작 결정적일때 본인의 속내를 말하는 법은 없었다. 특이한 건 언젠가부터 홍이사 프로젝트에 그 동기가 속해 있더라는 것. 그러더니 그녀의 이름은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 TFT 리스트에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그 무렵이었다. 그 동기의 아버지가 작은 회사의 대표라는 말, 홍이사랑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무던하다 못해 털털해 보였던 그 동기가 달라 보였다. 그러고보니 가는 뿔테 속 작은 눈이 매섭게 빛날 때가 있었다.



D-Day PM 18:00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전체를 빌린 그날의 연말 파티가 시작되었다. 스테이크가 포함된 저녁 식사가 나오고 대표 및 임원의 스피치가 차례로 진행되었다. 올해의 루키를 뽑는 프레젠테이션은 마지막 순서였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지만 그때의 나는 발표, PT만큼은 자신 있었다. 누가 뭐라도 맡겨주면 정말 잘 팔(selling) 자신이 있었다. 신이 나에게 준 능력이 있다면 그건 화술이었다. 그렇게 제안하고 설득하고 파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도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특하면 기특했다. 이 좋은 걸 팔아야지 왜? 외향성? 지금의 20배. mbti로치면 eeee가 그때의 나였다.


무엇인가 판다는 것, 특히 광고 기획안을 파는 것은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게임에서 이기는 건 파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 꿈은 글을 쓸줄 아는 기자였지만, 어쩌면 광고대행사 AE가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아니, 설령 발표하는 재주가 없었어도 나는 나를 바꿔 적응시켰을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아야 했던 이십 대 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눈에 들어 연봉을 잘 받고 슨진해야만 서울살이 버틸 수 있었다. 잘해서 잘한 게 아니라 잘하지 않았어도 나를 단련시켜 잘하는 내가 되어야만 했다.



 그날도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피티를 했다. 관리자들이 보기에 우리- 사원, 대리급- 들이 어쩌면 귀여워 보였을 것이다. 결론으로 가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정반합으로 풍어 설득하기 위해 애쓴 내 피티는 누군가에게는 괜한 짓으로, 누군가에게는 인상적이었을지 모른다. 누구도 나처럼 애쓰는 모습은 아니었다.


전직원 앞에서 높은 하이힐을 신고 피티를 하면서 나는 직감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애초에 주인공은 따로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몇몇만 알지 못했다는 것을. 1등은 옆부서 K대리가 수상했다. 후보 중 가장 힘빼고 발표한 발표자였다. 그의 기획은 신선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홍이사 스러웠다. K대리는 홍이사와 종종 같은 안경테 같은 캐시미어 브랜드 코트를 입고 다녔다. 사람들은 종종 그의 뒤에서 그를 리틀 홍이사라 불렀다.


올해의 루키가 발표되자 직원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마치 나만 빼고 다 예상한 얼굴로. Y도 나처럼 수상하지 못한건 마찬가지지만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올해는 선배가 받지만 내년은 내 것이라는 신호를 주고받는 듯했다. 둘은 같은 학교 선후배였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주눅들었을까? 아니었다. 3대가 서울 사대문 안에 살아야 인정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이한 홍이사의 기이한 생각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3대가 서울 사대문 안에 살지 않아도 일 잘하고 성과 인정받는 내가 되기 위해 나는 내 갈길을 가면 된다 생각했다. 홍이사는 그 후로 복도 지날때 내 인사를 받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그 연말 파티 이후로 얻은 것이 있었다. 갑을 관계는 회사 밖에만 있지 않다는 것. 회사 안에도 계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대가 사대문 안에 사는 집안이라는 명제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 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스스로에게 단단히 이르고 있었다. 대표이사까지 쥐락펴락하는 홍이사였지만 나또한 홍이사에게 어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였을 것이다. 회사는 연간 빌링(billing)이 백억 정도되는 제법 큰 광고주를 수주했다. 홍이사는 선심 쓰듯 그 프로젝트에 나를 포함시켰다. 홍이사가 연말 파티때 나를 유심히 봤다는 이야기는 다른 동기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 해 나는 회사에서 높은 보너스를 받았고 그가 에이전시를 차려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몇 건의 큰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그의 눈에 들려 애쓰지 않고 당당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원이 아닌 나는 어떻게 해도 그는 눈에 들수 없음을 짐작했기에 그렇게 행동했다. 이제 사회에 갓 나온,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따끈따끈 사원 3년차. 온실까지는 아니어도 야생으로부터 보호해줄 울타리가 필요할때 그는 나에게 을로 살아가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고마운 점도 있었다. 사대문. 나태해질 때마다 나는 그 단어를 떠올렸다. 3대가 사대문 안에 살지 않아서 좌절하는 일 생기지 않도록 이십대의 나는 포기보다 나를 단련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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