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그의 휴지통에서 나온 그것?

정반대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by 엘슈가

Mar 3. 2025

부부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 한 달여 동안은 매일이 신선했다. 남편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몰랐던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달까? 그의 휴지통에서 매주 발견된 이것에 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신입 입사 후 한 달 만에 자격증 취득

지점에서 손꼽히는 영업왕

공채 출신 최연소 부장 승진

그에게는 어느새 이런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남자'

배우자로서 좋기만 했냐고 물으면 답은 '그건 아니다'일 거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면 부침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신도 그 옆의 배우자도. 그렇게 부침 속 일상의 소소함도 채워가며 우리의 삼십 대와 사십 대 초반이 지났다. 틀에 박힌 표현 같지만 쏜살같이. 그렇게 치열하게 내달려온 그가 퇴사 후 사무실을 개업했을 때 내가 그를 위해 빼놓지 않고 했던 일은 이것이었다.

'사무실 휴지통 비우기'

너무 소소한가? 남편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다. 내가 나의 본업으로 2~3일 출근을 거르고 후에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그의 휴지통엔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아마 그도 기다렸을 것이다. 아내가 출근해 자신의 휴지통을 비워주기를. 의도한 건 아닌데 휴지통은 우리의 사랑의 오작교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보, 이것 좀 봐. 나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어! 엊그제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고'

'그래 알지~ 휴지통 쯤은 내가 깨끗이 비울게. 당신 고생했어'

당연히 우리는 아무런 말하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소통하는 게 우리 부부의 방식이다.

그런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해주던 그의 휴지통에서 매주 발견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서너 장의 로또다. 그것들은 이번 주도 당첨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매번 서너 조각으로 찢어져 휴지통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남편이 회사를 다닐 때도 로또를 산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여행 갈 때나 같이 외출했을 때 로또 판매점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달려가 볼일을 보고 왔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꾸준히 규칙적으로 로또를 사는 줄은 몰랐다. 휴지통을 비우며 나는 처음에는 피식 웃었던 것 같다. '오빠는 정말 로또가 당첨되리라고 생각해서 사는 걸까?' 중얼거리며. 그러다 '이렇게 꾸준히 사다가는 정말 당첨이라도 되는 거 아냐?' 김칫국을 사발째 드링킹 하는 날도 있었다. 부동산 중개라는 게 쉬울 때만 있으랴? 일이 안 풀린다 싶을 땐 그 로또가 유독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빠는 로또에 당첨돼서 이런 머리 아픈 일... 다 그만하고 싶은 걸까?' 그날따라 유난히 굽은 것 같은 그의 넓은 등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정작 로또는 로또일 뿐인데.

어떤 날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로또 당첨되기를 바라는 그가 어쩌면 나보다 더 긍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로또는 당첨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사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해서 로또는 남의 일로 생각해 온 나보다 희망적인 사람일지 모른다고. 로또 하나를 보아도 우리는 달랐다. 달라서 신기했다.

'부부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면 싸우기 쉽다던데요'

내가 우리 부부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열에 여덟은 돌아오는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싸울 때도 있지만 정도 생기더라고요.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그냥 배시시 웃곤 했다. 그 날들이 어떤 날들일지는 통과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 같기에. 그저 지금 알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를 도자기를 빚듯 빚어나갈 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