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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큼 알차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0월까지는.
올해만큼 꽉 채워 보낸 시기도 없다고 자신에게 자주 말해주었다.
그 믿음에 배신을 당한 건 10월 말부터였을까, 11월 초부터였을까. 그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공허함이 나를 흔들었다. 나는 그 공허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2025년 한 해는 여러 페르소나를 짊어지고 지냈던 시기였다.
우선 작가로서의 나.
2025년 3월, 흠모해 온 출판사와 책 계약을 했다. 내 원고의 가치와 결을 알아봐 주신 출판사 측에 보답하는 길은 좋은 책을 쓰는 것이라 여겼다. 해당 분야의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오가며 독자들이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연중 내내 원고를 매만졌다.
내 이야기의 기승전결의 완결성에 더해 지금 시대에 살아있는 이야기, 독자들을 움직일 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그게 나의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매일 백팩에 노트북과 출력물을 넣어 다니며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렇게 출판 계약 후 10개월을 꼬박 작업했다. 자연히 책은 연내 나오지 않았다.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온라인에서 소통해 온 사람들은 때때로 나에게 물어온다. "작가님 책 언제 나오나요?" 그 질문을 받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가장 중심에 놓은 일이고 가장 큰 리소스를 들인 일인데 눈에 보이는 아웃풋이 없다는 것. 기획부터 퇴고까지 3여 년. 아직 이처럼 호흡이 긴 작업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원고 작업에 몰입하다가도 빨리 내놓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 이름으로 된, 예쁜 표지의, 책을 펼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달음에 읽히고, 독자들을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책. 하지만 그런 결실을 보려면 숙성의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하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둘째, 글쓰기의 조력자 라이팅 코치로서의 페르소나
한 해 동안 이 일을 놓은 적이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글쓰기가 필요한 분들을 진심으로 돕는 코치 일. 함께 쓰고 합평하고 성장해 가는 일. 이 문장을 쓰면서 알았다. 올 한해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왜냐하면 이 일은 오랜동안 '이루고 싶었던 영역의 일'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했고 매 순간 진심을 담았다. 코치로서 부단히 달려온 한 해 동안 두 분의 작가님이 원하는 출판사와 계약했고 한 분이 문학 공모전에 입상했다. 내 일이라도 된양 기뻤던, 잊지못할 순간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일은 코치가 두각되는 일은 아니다. 조력자의 역할은 보일듯 말듯 그 정도가 적정하다 생각한다. 이 업무의 아웃풋은 나의 아웃풋 만은 아니다. 코칭을 받은 작가님의 아웃풋인 게 맞다.
셋째, 입시를 치르는 아이의 엄마 페르소나다.
아이는 독립적인 편이었다. 그런 아이가 수험생 생활을 시작하며 나를 많이 찾았다. 좋았다,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던 아이의 성적에 나는 엄마로서 지원과 간절함을 보탰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나의 친구들- 선후배와 친구들은 나에게 물어온다. 결과 나왔어? 시험 전에 응원으로 살뜰히 챙겨준 그들에게 뭐라도 답을 하고 싶건만 이번에도 나는 명쾌한 답을 주기가 어렵다.
아이의 입시를 지나오면서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수험생 학부모는 처음이라는 것. 아이와 나 팀이 되어 똘똘 뭉치면 헤쳐나가지 못할 일이 없다고 여긴 것. 입시는 25년전보다 냉혹했다. 입시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지난했다. 우리는 지금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쩌면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 역시 한 해 동안 시간과 리소스를 많이 들인 일인데. 손에 잡히는 무엇이 아직 없다.
넷째,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나.
4분기에 접어들면서 몰입할 일이 필요했다. 급변하는 세상에 내 일에도 공부가 필요했다. 일과를 얼추 마친 시간 9시면 강의 사이트에 접속했다. 모든 게 익숙치 않아 부대꼈다. 이 역시 금방 결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다.
한해 동안 이종의 페르소나로 빼곡하고 분주하게 달려왔건만, 지나고 나니 보여지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지배적으로. 그래서 몹시 흔들렸다. 굳건히 믿고 있던 친구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 건 12월 어느 작은 모임을 다녀오면서였다.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고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모임 멤버들. 개별로 친분이 있다기보다 그저 모임에서 이야기 나누고 서로 응원해 주는 사이다.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어느 저녁이었다. 마침 건너야 할 교차로에 신호가 바뀌었다. 서두르면 건너갈 수 있는 타이밍이었지만 나는 멈춰섰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추운 영하의 날씨였다. 마침 작디작은 진눈깨비가 회색 길가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깨알 같은 진눈깨비가 머리를 톡톡 토도독 때리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이 얼어 자꾸만 오타가 났지만 타이핑을 이어갔다.
'너의 일 년, 헛수고 한 게 아니라고.
그거 어디 가지 않고 네 안에 고스란히 쌓였을 거라고.'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나에게 직접 해주는 이는 없었는데. 그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일 년을 치열하게 살아내 온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나는 누군가로부터 이 문장을 들은 것 같았다. 알수 없는 힘이 시키는대로 타이핑을 이어갔다.
'어쩌면 올해 받았어야 배송은 연기되었을지 모른다고.
그 배송은 지금 오고 있는 중일 거라고.
그러니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동동거리지 말고,
너만의 속도대로 가라고.
속도는 조절하고 밀도는 높이면서
그렇게 한 해를 또 살아내자고'
역시 오타 투성이었지만, 좋았다. 나는 오타 가득한 이 메모장을 훗날 꺼내 볼 것이다. 한파로 기억될 그 날 흩날리던 진눈깨비를 기억하면서.
다행이었다. 메모장을 열게 해 준 그날의 진눈깨비만큼은 제 시간, 제 주인에게 배송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