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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내일이 카드 대금 상환일인데 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간당간당했다. 당시는 남편이 부동산 개업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여유자금은 부동산에 들어가 있었고 주택담보대출 이자 납입이 시작되어 매달 고정 비용을 포함 700~800만 원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돈을 벌지 않은 적도 없었지만 이때가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돈을 벌었던 때라고 해도 무리 없을 것이다. 마케팅 컨설턴트라는 본업에 더해 입시 사이트 상담 교사 일, 원고 교정 일, 영상 작가 일 등 밤낮으로 안 해 본 부업이 없을 정도였다.
남편도 저렇게 애를 쓰고 나도 열심히 버는데 왜, 왜 매달 200만 원이 비는 걸까. 왜 종종 생각지 못한 곳에서 추가 지출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를테면 자동차세, 재산세, 부모님 칠순이라든지. 답답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 나는 이 '경제관념'을 배송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세계 문학, 추리 소설, SF 소설 전집은 읽었어도 경제/금융 관련 실용서를 읽은 경험은 좀처럼 없다. 요즘 아이들처럼 자신의 용돈을 자신의 계좌에 넣어두고 돈 개념, 단리/복리 등 이자 개념을 배우는 체계적인 교육은 우리 집과 먼 이야기였다.
오 남매로 북적북적했던 우리집은 우리끼리 피자라도 시켜 먹을 때면 용돈이 남아있는 사람이 돈을 내고 없는 사람은 안내면 되는 '정'의 사회였다. 칼같이 정확한 '셈'의 사회가 아닌.
지금 들으면 정말 유치한 이야기를 하나 고백하고자 한다. 이런 나의 경제관념 없음을 나도 자각하고 있었다. 당시 결혼 대상자의 이상적 직업은 금융권에 다니는 남자였다. (너무 단순한 생각인가) 지금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그가 증권 회사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만나기도 전에 호감이 먼저 마중을 나갔다. 결혼하면 그 어려운 셈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상상하며 혼자서 진도를 나간 기억이 있다. (결혼 후 가계부를 줄곧 내가 관리해 왔으니 지금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쯤 될까)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자책을 하다 못해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 때였다. 희한하게 은행 애플리케이션의 다른 메뉴를 눌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메뉴는 [전체 계좌 보기]. 그런데 가만, 내 눈에 보이는 게 뭐지? 10,000,000원? 백만 원도 아니고, 천, 천만 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어떤 날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목돈이 생겨서 감사한 마음도 들고, 이걸 어떻게 하면 짜임새 있게 잘 쓸까? 고민하다가 주거래 계좌가 아닌 별도 계좌에 묶어두고 깜박한 것이다. 건망증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상황은 웃긴데 덜컥 눈물이 나왔다. 돈이 없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없는 줄 알았던 돈이 생기니 하늘이 마냥 맑아 보였다. 이번 달 카드값만 내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던 구겨졌던 마음이 다림질이라도 한 냥 말끔히 펴졌다. 없는 줄 알았던 공돈이 생기니 이런 생각부터 들더라. ‘뭐부터 사볼까?’ 얇은 종잇장처럼 잘 뒤집히는 사람의 기분이라니.
마흔셋, 그 시기를 우리 부부는 정통극처럼 때론 시트콤처럼 울고 웃으며 헤쳐나갔다. 경제관념에 있어서 나도 더 이상 잘 모른다며 회피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깨달은 시기였다. 가족을 지키려면, 나를 지키려면 필수 불가결한 그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짠 테크부터 주식, 부동산, 거시 경제부터 미시 경제까지 되는대로 공부했다. 경제 공부 모임에 들어갔고 미국 주식, 달러와 금 투자에 눈을 떴으며 공부한 것을 묵히지 않고 실행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돈을 어떻게 벌고 굴려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 경제관념을 나는 배송받지는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마흔을 넘으면서 스스로 배송받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능력을 배송받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시길. 언제든 마음먹으면 셀프 배송 버튼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니까. 단, 그 길은 안전지대(comport zone)를 벗어나는 길일 수 있으니 각오는 단단히 해두시길. 책이나 주변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예방 주사를 미리 맞아 두는 것도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