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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능력 또는 훈련에 의해 획득한 능력을 재능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다. 부모님과 살 때에는 나 말고 요리할 사람이 많았고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 때에는 사 먹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재료를 사 와서 정성껏 손질하고 요리한 뒤 상을 차려내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맛에 대해 까탈스러운 편도 아니었다.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게 가장 맛있고 웬만하면 아무거나 감사히 잘 먹는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식사 때만 되면 "뭐 해줄 거야?" 하는 얼굴로 나만 쳐다보고 있는 남편과 아이를 볼 때면 나도 답답했다. 내 요리는 맛에도 자신이 없었지만 시간도 만만치 않게 오래 걸리는 편이라서. 회사 위치가 멀었던 남편이 이제 퇴근해서 출발한다고 연락 오면 그때부터 초집중해서 요리를 해도 만들어낸 반찬은 고작 두어 개. "뚝딱 만들었어" 하고 7~8첩 반상을 차려 사람이 나에겐 초인으로 보였다.
그러던 마흔셋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요리에 흥미도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내 요리 스타일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첫째, 계량을 하지 않는다. 아니 요리도 못하면서 계량도 안 하는 스타일이라니. 이성적인 T면모보다 감성적인 F성향이 강한 나는 비 오는 날의 김치찌개 간과 맑은 날의 김치찌개 간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히 계량은 잘하지 않는다. 그 음식을 먹는 당사자는 맛이 어째 늘 들쑥날쑥이라고 생각할 테지. 벌써 미안하네.
둘째, 딴생각 딴짓을 한다. 요리할 때 그렇게 영감이 떠오르는 편이다. 특히 야채 애호박이나 양파 당근 등을 같은 크기로 썰 때! 머릿속은 평소와 다른 자극을 받았는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글감부터 하반기 사업 계획, 글쓰기 코칭 아이디어까지! 가만히 있으면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 칼질을 하면 구체화되고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곤 한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이 묻은 손을 에이프런에 쓱쓱 닦고 메모지 한 귀퉁이에 아이디어를 적곤 하는 것. 돌아서면 그 아이디어 감쪽같이 증발할 게 분명하기에!
그러다 보면 찌개는 넘치고, 계란말이 한 면은 갈색으로 타고 있으며 제육볶음은 졸아 있기 일쑤다. 그래도 어쩌랴. 요리할 때가 나에겐 아이디어 발상 버튼인 걸.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음식에서 펜 맛이 느껴지면 어떡하지? 남편에게 물어봐야 하나? 아, 물론 손 하나는 끝내주게 깨끗이 닦으니 걱정은 마시길!
셋째, 간을 세게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위가 약했다. 간이 화려하고 센 음식보다 심심하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좋아했다. 그 취향은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하다. 고춧가루, 후추, 파, 마늘 등 향신료를 좋아하는 남편은 처음엔 내가 맞춘 간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식당 음식들이 너무 간이 세다고 하는 걸 보면 어느새 적응한 듯 보인다. 야호 내가 이겼다!
요리 스타일을 셀프 분석하고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요리 재능은 배송받지 못한 게 분명하다고. 요리 재능은 배송받지 못했지만 다행인 점도 있다. 내가 만든 요리는 신선한 재료를 쓰고, 제철 재료를 우선시하며, 최소한의 가공만을 하고 간은 세지 않게 하기에 건강에는 무척 좋다는 것이다!
남들의 출중한 요리 실력에 종종 작아졌던 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왜 그런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갖지 못한 남들의 재능을 무턱대고 부러워할 게 아니라, 가진 재능에 감사하고 나눌 줄 아는 것, 그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비단 재능뿐일까. 남들이 가진 걸 부러워하다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살필 일이다.
누군가는 맛있는 요리로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는 반면 누군가는 감칠맛 나는 글로 싸늘히 식어버린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줄 수 있는 거니까.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