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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Dec 17. 2021

어느 날, 마당에 탕수육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오해와 편견

그날은 대낮이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작업실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작업실을 들어가는 문 앞에 탕수육이 한 조각 떨어져 있었다. 분명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는 없었다. 아니, 내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못 봤을 수도 있다. 엄마는 그 탕수육 조각을 보지 못했는지 무심한 듯 작업실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있자니 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우선, 우리가 최근에 탕수육을 언제 먹었더라. 며칠 전 짜장면이랑 짬뽕을 시켜먹긴 했는데, 탕수육은 시키지 않았다. 아니, 사실 시켰을 수도 있다. 만약 시켰다고 하더라도, 그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 그러면 그 탕수육이 언제 어디에 떨어졌고, 바람에 날아 온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탕수육은 꽤 무겁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먹은 탕수육은 아니었다. 그러면 누가 먹은걸까. 우리 작업실은 단독주택을 개조한 1층짜리 건물인데, 그 옆에는 높디높은 오피스텔이 한창 공사 중이다. 그곳에는 아직 창문이 다 달려있지않아 2층 창문에서 뭔가를 던지면, 우리 작업실 마당으로 쏙 하고 들어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우리의 작업실이 보이는 그곳 2층 창문에서 공사를 하던 아저씨들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다가, 하나가 흘렀다고 생각했다. 공사하며 생기는 자갈이나 부속품들이 우리 마당으로 떨어지곤 하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작업실 마당의 천장은 햇볕가리개로 충분히 가려져 있었다. 자갈이나 부속품들이 종종 떨어지다 보니, 아빠가 작업실 마당 전체를 햇볕이 살짝 통하는 가림막으로 가려놓은 것이다. 작업실을 들어가는 문 바로 앞에 탕수육이 정확하게 떨어지기에는 너무 의도된 위치 같아 보였다.


우리 가족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기분 나빠서, 먹다 남은 탕수육을 던지고 간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는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옆집 아저씨가 조금 험상궂게 생겼던 것 같기도 했다. 작업할 때 노래를 너무 크게 틀었던 탓일까? 아무리 그래도 왜 탕수육을 마당에 던졌을까.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고양이가 물고 온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매번 우리 마당 천장에 매달려있는 고양이가 탕수육 한 조각을 물고 왔다가,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에 천장에 매달려 있다가, 마침 그 탕수육 한 조각을 떨어뜨렸다가, 내가 발견한 것이었다.


오늘 엄마는 마당청소를 좀 하라고 했다. 아 맞다, 그 탕수육 한 조각 아직도 안 치웠네. 낙엽과 함께 탕수육 한 조각을 쓸어내는 순간, 탕수육은 너무 가볍게 멀리 날아갔다. '?' 가까이 가서 한번 더 그 조각을 쓸어내면서 그것이 탕수육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 조각은 공사하면서 잘려 나온 "경질우레탄폼"이었다. 거품처럼 차오른 우레탄폼을 칼로 잘라내면 그 모양이 참 탕수육을 닮았더라. 색도 마침 노르스름한 잘 튀겨진 탕수육 색깔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옆집 아저씨에게도, 공사장 아저씨들에게도, 고양이에게도, 경질우레탄폼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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