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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Jan 28. 2023

어쩌면 핑계가 필요했을 수도

정말 긴장이 풀리면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걸까?

연휴가 다가오자 나는 불안해졌다. 늘 취소표를 구해서 내려갔던 부산인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표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차를 타고 내려가자니, 귀경길의 정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번 명절은 서울과 부산 각자 집에서 좀 쉬자는 부모님의 말씀에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연휴 첫날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났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허락된 휴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프리랜서인 나는 주말에도 늘 작업에 매달려 있는 편인데, 공휴일에는 모두가 쉬니 그제야 마음을 편하게 놓고 쉴 수 있다. 쉬는 동안 이사 후에 아직 다 풀지 못함 짐들도 꺼내고 밀린 집안일도 좀 할 요량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탓인지 몸이 무거웠다.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또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생각해 보니 주말에 이렇게 마음 편히 침대에 누워본지도 얼마만인지. 하려고 했던 일들도 잊은 채 해가 질 때쯤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웬걸 잠을 잤는데 몸은 더 무거워지고, 속도 좋지 않고 머리도 아프더니, 곧 온몸이 다 쑤셔오기 시작했다.


죽을 시켰다. 몸에서는 약간의 열이 났고, 근육통에, 오한으로 몸은 으슬으슬하고, 소화도 안 됐다. 죽을 다 먹으면서 나는 직감했다. 꽤 오랜만의 몸살이었다. 평소 늘 긴장상태로 살아가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조금 쉴 수 있는 시간을 얻었더니, 몸살이 찾아왔다. 쉬는 동안 못 다했던 것들을 좀 해두려고 했건만, 내 몸은 어찌 알고 아프기로 한 것일까.


긴장이 풀리면 몸이 아프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옛날 사람들 말은 정말 틀린 말이 없는 듯,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살이 왔다. 몸살이 조금 나아가던 이튿날, 목 담이 오기도 하고, 안 나던 피부 알레르기도 나는 것을 보면, 정말 내 몸이 내가 조금 여유가 있는 틈을 타 아프려고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평소에는 그저 누워있는 것,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데 쓰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던 나였다. 아픈 동안 나는 늘 보고 싶어도 작업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못 보던 넷플릭스 시리즈도 볼 수 있었고, 책을 읽는가 하면, 글도 쓰고, 평소에 못 잤던 잠도 실컷 잤다. 아프다는 것을 핑계 삼아하고 싶었던 것을 다했다. 어차피 아파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으니, 딱히 죄책감이나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이번 연휴에 하려고 했던 이삿짐 다 풀기, 집 정리 하기, 옷방 정리하기 등 계획한 것들 중에서 많은 것들을 못하고 아프기만 했지만, 꽤나 충전된 기분을 느꼈다. 연휴가 끝나고 아파서 더 잘 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온전히 쉬라고 내 몸이 나에게 좋은 핑계거리를 하나 준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 나는 죄책감없이 쉴 핑계거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요가원 선생님이 내게 연휴 동안 잘 쉬었나 보다라며 얼굴이 달라진 것 같다고 그랬다. 연휴 내도록 잠을 진짜 많이 자서 그런지 연휴 끝나고는 몸도 덜 피곤하고, 연휴 이후의 하루하루가 충만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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