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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 연 Sep 20. 2022

그놈의 꿈이 뭐길래

나는 꿈을 실현하고 싶은 걸까, 꿈을 꾸고 싶은 걸까?

저곳은 어떤 세상일까?, 저렇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꿈을 꾸는 것은 달콤하다. 이따금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괴롭기도 했지만, 원하는 것을 향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그 일을 해나가는 일은 분명 행복하다. 우울증을 겪으며 의욕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삶을 체험하고 나니 이러한 생각에는 확신이 있다. 꿈꾸지 않는 삶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욕망도 같이 제거한 삶이었다. 그것은 끔찍했다. 


상당히 최근까지 꿈이라는 것에 가졌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은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된다고,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고 말을 했다. 세상이 예시로 들어주는 꿈은 어떤 장면과 같은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하고 입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신하는 말을 내뱉으면 진짜로 실현이 된다는 얘기를 책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접했다. 머릿속에 상상하는 그 장면 속에 내가 들어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그리며 그 장면 속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려면, 현재의 나의 부족한 점이나 아쉬운 점을 끊임없이 찾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이 아닌 내가 원하는 다른 꿈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동기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지부조화를 불러올 뿐이었고 열망의 모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의 나를 바라볼 때마다 자괴감만 쌓여갔다. 


이것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삶일 수가 없었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었고,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인생은 수많은 지금, 수많은 현재들이 쌓인 결과물일 뿐이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모습을 미리 정해놓고 현재의 나를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후회스럽지 않을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꿈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그리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절대 현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꿈은 꾸는 것에 가치가 있는 거구나. 꿈은 꾸는 것 그 자체만으로 오늘의 나에게 충분한 행복과 동기부여를 준다. 꿈의 진짜 가치가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꿈은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실현에 대해 고민해야 할 대상은 꿈이 아니라 오늘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을 거쳐 한번 딱 정하고 나면 끝나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인생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가 혼쭐이 난 기분이다.


꿈을 찾아보겠다고 발을 동동거릴 때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었다가 지역사회 간호사였다가, 해외 간호사도 멋져 보였고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의 빠짐없이 챙겨보면서 무대 위에서의 짜릿함을 떠올리기도 했다.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것은 많은데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니 억울했다. 그렇다고 여러 개를 담아두자니 두 마리 토끼만 쫒아도 다 놓치기 십상이라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 손이 보이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일단 하나씩 시작해봤다. 내가 원해서 한 것들인데 실망도 많이 했고 어떤 것들은 해보기도 전에 좌절했다. 방송이며 책이며 남들은 오랜 꿈을 이뤘다며 행복해하던데 나는 하는 것마다 이 모양이라니 무척 속상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막상 사람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원트랙으로 달려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꿈을 이루었다고 기쁜 건 잠시, 삶이라는 연속선 위의 한 점일 뿐 그 뒤로 이어지는 시간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말은 이렇게 나오는 거구나 싶었다. 대단한 꿈을 이뤘더라도 지나온 시간은 과거가 됐고 과거는 그뿐 그들도 똑같이 오늘을 살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 데 모아 공통점을 생각해 봤다. 나는 누군가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그런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면 불편함이 해소되는 것 이상으로 내 에너지가 충만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타인에게까지 에너지를 나누어 주려면 일단 내가 건강하고 강한 에너지를 가져야 했다. 그냥 기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분대로 도움을 주려다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때가 허다했다. 너무 지칠 때면 내가 선택해서 한 일임에도 도리어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자괴감을 불러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어떤 좋은 일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소진시켜서는 종국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길게 글을 적어놓고, 사실 아직도 꿈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그래서 이런 마음을 글로 옮겨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더 이상 바깥에서 요술램프를 찾는 건 그만이라는 것이다. 지니는 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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