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세 Feb 20. 2019

여성에게 종교는 없다 1

모태신앙이었던 한국여자의 가부장교 탈출기

 2월 16일 스트리밍에서 갑자기 어떻게 종교를 잃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생각나는 대로 나불댔는데 정말 아무렇게나 내뱉어서 누가 보면 단순한 억울충이 되어버린 게 조금 아쉽기도 하고 나중에 언젠간 먼 훗날에 할지도 모를 탈종교 컨텐츠를 위해 정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그리고 어떠한 컨텐츠가 탈코르셋의 계기가 되는 것처럼 나의 글이 누군가에겐 탈종교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1탄 : 나는 어떻게 탈가부장교를 했는가?



 기독교ㄴㄴ 가부장교. 가부장제와 기독교는 지독하게 밀접한 관련이 있다. 떼려야 뗄 수 없음.


 나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었다.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이 당연했고, 식기도(음식을 먹기 전에 하는 감사기도)를 꼬박꼬박했으며 성경을 읽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던 삶의 모습에 기독교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기독교인이었다. 뭐, 잠깐 '방황'하던 때가 있었으나, 정신 차려보니 청소년기까지 합쳐 6년간 같은 찬양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청소년 시기워십팀, 청년 때는 기자재(엔지니어)팀. 찬양팀처럼 '신앙심'을 기르기 좋은 곳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정형화된 여성'만드는 곳도.


  '보통'의 찬양팀이 그렇겠지만, 우리 찬양팀에도 규칙이 있었다. 단(무대) 위에 설 땐 모자 쓰지 않기, 외투 입고 서지 않기, 박수 칠 때 높게 치기 등 형식적인 것들이 있었으나 그중 으뜸은 짧은 바지나 치마 입지 않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남자들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규칙이고 치마는 활동성의 문제기도 했으나 뒤에 붙는 수식어구가 또 있지. '남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



 물론 직접적으로 들은 건 아니었다. 심지어 워십팀에 있을 때 리더를 맡고 있어서 밑에 애들이 들어왔을 때 이런 조항을 재생산했던 흑역사가 있다. 남자들이 시험에 들어~ 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나-개인적인 자존심이 있었음- 내가 인용했던 성경 구절들은 결국은 여성들을 틀에 가두는 말들이었다.(희미한 기억으론 아마 여자들은 교회에서 머리를 가리고 어쩌구 이런 구절이었던 듯)

 은근하게 또 당연하게 깔린 정서. 음란의 영이니 뭐니 하는 개소리들. 탈코를 한 입장에서 치마를 왜 못 입게 하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네가 그런 식으로 입으니까 남자들이 시험에 들잖아, 라고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항.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남자들은 여자 다리만 봐도 흥분하는 미개한 생명체라는 걸 반증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성경엔 이런 구절도 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이런 구절은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남자들에게 유리한 건 강조하고 불리한 건 감춘다. 이런 이중대의 늪.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잠잠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단초.


아니 그러니까 언제 탈가부장교 했냐고


  서론이 길다.(너무 할 말이 많음 차차 시리즈로 풀어야지)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찬양팀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각성'하게 됐다.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녔다. 근데 찬양팀엔 4년 있었음ㅋ 교회가 내 가치관을 구축하는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내 인간관계도 그곳에 몰려있었고 거의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번은 '신앙' 때문에 BL도 잃었었다. 나중에 다시 주워 먹었지만, 물론 지금은 탈오타쿠함.

 기독교는 나의 모든 것이었고 아무리 시스템이 빻았어도 '신-그러니까 하나님 예수님-'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너무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정신승리 했다. 왜냐면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냥 잃으면 되는데 끝까지 붙잡고 있느라 스스로 괴로움에 빠져있었다.

(덧붙이지만 기독교의 전복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떠한 여혐 문화를 전복하자고 하는 것과는 너무나 천지 차이. 여성을 2등 시민, 재생산하는 기계 정도로만 치부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발전한 종교다. 근본부터 썩었기 때문에 차라리 새 종교를 만드는 게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나날을 보내던 중 유튜브에서 어느 영상을 보게 되었다. 갓마더(https://youtu.be/TlyU1KCCrVo)라는 제목이었는데 기존에 있던 남성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닌 여성으로부터 생명과 창조가 시작되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상도 영상이었지만 "여성은 그 자체로 생명이고 남성은 그 생명을 탐하는 자이다." 같은 덧글들이 정말이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듯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은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 말하지만 아버지라 불리고 권위적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였다. 창조의 능력은 여성에게 있다. 생명은 여성으로부터 나온다. 생물학적으로만 봐도 남성의 생식세포는 배주에 의하여 소멸당한다. 남성은 소멸이고 여성은 생명이자 시작이다. 신이 있다면 당연히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또 탈가부장교를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가장 큰 이유는 구조 안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또, 곤고하게 만드는 '기혼'을 비판하는 것처럼 기독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 체제를 비판만 하며 앉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비판하면서도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내가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또 재생산하는 것이다. 결국은 빨래터 페미니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봉사'라고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정도의 자기희생과 무급노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예배/설교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세뇌교육과 거기서마저 도구화되는 여성의 이야기들을 참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구조 밖으로 나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