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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19. 2020

전지적 프리랜서 시점

그 이름도 화려한 프리선언


2018년 겨울 친언니의 결혼식. 이름도 성도 모르는 팔촌쯤 되려나. 한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어짤라꼬! 뭐 먹고 사노?!’

난생처음 보는 조카손녀의 안녕이 정말 궁금하셨던 걸까, 사돈의 팔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할머니가 생각하기에 좋은 직장에 다녔던 나에 대해 어떻게든 흠을 잡고 싶으셨던 걸까. 굳이 좋은 날 남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름 모를 할머니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프리랜서로 겨우 자리 잡는 중이었던 나는 그저 웃으며 상황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좋은 직장의 정확한 기준은 여전히 알 수 없으나 만족할 만한 직장임에는 틀림없었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매일 외국을 다니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다채로워 일상이 지루한 줄 몰랐다. 월급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해외 체류비는 쏠쏠한 보너스였다.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도 즐거웠고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까지, 적성에도 찰떡같이 맞았다. 하지만 고된 업무강도와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로 이내 건강은 악화되었고, 때문에 나의 사직은 너무도 서럽고 힘든 과정이었다. 때려치운 것도 아니었고 뭘 먹고살지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 동안은 몸 컨디션을 되돌리며 휴식을 취하자고 다짐했건만 부지런병이 도져, 나보다 먼저 퇴사 후 승준생을 코칭한다는 동기와 동업을 시작했다. 하다 보니 재미있다. 학생들이 따른다. 점점 책임질 학생들, 아픈 손가락 같은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지금의 3년 차 프리랜서 강사가 되었다.



프리랜서란 모름지기 남녀의 동거와 같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편안하게 대화의 소재가 될 수는 있지만 부모님 세대의 인정을 받긴 어렵다. 승준생을 코칭하는 개인사업자라 말씀드리니 부모님은 아르바이트쯤으로 생각하셨나 보다. 언젠간 그만두고 여느 집 아들 딸들처럼 그럴듯한 대기업에 입사하겠지 생각하셨던지 3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직도 공무원 시험을 봐라, 공기업은 나이를 안 본다더라 노래를 부르신다.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결혼만 하면, 결혼해서 아기만 낳으면 편안할 줄로만 알았던 명절이 서른이 훌쩍 넘은 나에겐 아직도 기피대상 1호다.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면 나만의 균형을 찾을 수 없다



프리랜서란 계속해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나에겐 작성할 서류가 많아진다는 것. 신용카드를 만들고, 적금을 들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기밀유지 서약을 하고, 전셋집을 계약하고, 사업자를 등록하고, 세금을 신고하고. 프리랜서가 되니 이 이상으로 작성할 서류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회사에선 월급 받고 연말정산만 하면 끝인 일을.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하며 고용주 또는 협업 대상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면 문구, 용어 하나하나에 얽매여 한 동안 골머리를 앓는다.



프리랜서는 프로 뱃사공이다. 프리랜서의 월급은 고무줄도 이런 고무줄이 없다. 물 들어올 때 미친 듯이 노를 저어야 한다. 2018년이던가. 국내 8개 항공사가 한 곳도 빠짐없이 비슷한 시기에 채용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은 7일인데 왜 그때의 나는 주 14일을 일하는 느낌이었을까. 오전반부터 저녁반까지, 평일반은 물론 주말반까지 수업을 하며 팔이 떨어져 나가라 노를 저었다. 덕분에 채용이 없어 주 3회 일하던 시기에도 나에겐 일용할 양식이 있었더랬다.



(프리랜서도 프리랜서 나름이라 나와 느끼는 바가 완전히 다른 프리랜서도 있을 거다. 참고로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프리랜서 강사의 관점이다.)



나에게 프리랜서는 말이 좋아 프리랜서. 백수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번거로운 일들이 수두룩하며, 불규칙성 때문에 항상 위기를 느끼는 그런 직업이다. 자유의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때려치우지 않고 4년 차, 5년 차를 바라볼 수 있는 건 ‘대리만족’ 덕분이다. 너무나 좋아했던 일을 직접 할 수 없으니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는 게 마치 내가 그 일을 아직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자아실현이란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니, 나에겐 대리만족이 일종의 자아실현인가 보다.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자아실현을 대신할 단어가 있을 터.

나는 나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리랜서로 굶을지언정 일단 1년은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더니 정확히 1년을 굶고 2년 차부터는 수입이 생겼다. (2년을 버티자 생각했으면 2년을 내리 굶었을지도. 1년으로 잡길 참 잘했다.) 회사라는 포근한 울타리를 포기하고 주위의 인정보다 나의 만족을 우선하니 프리랜서가 천직이 된다.



한 때 메인 3사 아나운서들의 연이은 프리랜서 선언이 화제가 되어 이제는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만 하면 기사화된다. 참으로 화려한 프리선언이다. 나의 프리선언은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했고, 기사화될 정도로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나는 나 홀로 프리선언을 했다. 2년 전 그때로 돌아가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그저 웃고 지나가진 않으리. 혀를 있는 대로 굴려서 말할 테다.

“F뤼뤤스로 잘 먹고살고 있어요.”



나의 보물 1호. 우리 학생들이 써준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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