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 Nov 04. 2020

반찬가게 VIP

가게 반찬에서 엄마 손맛을 느끼며

우리 집 요리를 책임졌던 외할머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반찬에 조미료를 넣으신 적이 없다. 우리 집 여자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조미료를 먹으면 죽는 줄 알았다. 비단 어린 시절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집밥 예찬론자로 활약했다.

엄마의 조미료 제로 집밥. 사위를 위한 한 상 차림



대학에 들어서며 상경한 나는 과방에서 동기들과 시켜먹는 짜장면, 설렁탕, 제육덮밥이 낯설었다. 몸에 나쁜 가루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이 조미료를 싫어했으니 바깥 음식을 먹는 일도 적었을 터. 하루 세끼 중 한 끼는 제대로 먹자는 다짐을 했다. 놀기도 바쁜 대학생이 수업이 파하면 마트로 직행해 초록색, 빨간색, 주황색, 영양분이 될 만한 것들로 골고루 장을 보고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를 했다.



그렇게 쌓인 나의 요리실력은 결혼 후 남편의 행복이었다. 살림을 합친 후 일주일 간 나의 저녁을 맛본 남편은 매일 저녁이 기대된다고 했다. 회사에서 오늘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 아이처럼 묻기도 했다. 칭찬에 춤춘 고래는 매 저녁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고, 휴대폰 앨범에는 훈장처럼 식단 사진들이 남았다.

나도 참 부지런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27일 나는 출산을 했다. 그즈음 해서 [식단] 앨범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추가되지 않았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다 했던 일인데 뭐가 그렇게 어렵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의 나는 죽을 맛. 5초만 떨어져도 엄마를 찾는 아이 때문에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육아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깔끔하게 살림을 포기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두 곳의 반찬 가게가 있다. 두 곳 모두 괜찮지만 맛, 가격, 종류 세 가지를 기준으로 두 곳을 번갈아 애용한다. 집에서 만든 반찬에 비할 바가 못되었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으니 차선책이 최선책이 되었다.



가끔 SNS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나처럼 살림을 포기한 친구도 있는 반면 육아, 살림, 내조 삼박자를 완벽하게 해내는 친구도 드물게 보게 된다. 아이가 없어도 하기 힘든 김장도 종류별로 척척 해내고 간장게장까지 담는 모습을 보며 한 번은 박탈감 아닌 박탈감을 느꼈더랬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반찬을 사 먹어도 괜찮은지, 예전이 그립진 않은지 물었다. 물어봐야 답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지금도 충분하다는 남편의 기운찬 대답을 들으면 조금 격려가 되지 않을까 했다. 기대와 달리 남편은 쭈뼛쭈뼛.

‘뭐...... 손 많이 가는 찜닭이나 이런 건 안 되겠지만...... 김치찌개나 그런 건 종종 해 먹어도 좋을 것 같아......’

예전이 확실히 그립긴 한가보다.

남편이 좋아하는 손 많이 가는 집밥



그러던 찰나 반찬가게 한 곳에서 온 문자. 골드 등급이 되어 더 큰 할인폭으로 반찬을 구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어디서도 되 본 적 없는 골드회원



반찬가게를 이용한 지 꽤 되었다. 애초부터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나로선 반찬가게를 들어가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언제쯤 단골손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요즘은 격일로 방문하는 나를 사장님이 알아보시는 눈친데. 언제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는 인사를 들을 수 있을까. 조미료에서 엄마의 손맛을 느끼는 요즘. 오늘도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정갈하게 그릇에 덜어낸다.





사장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