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교수 채용에서 4년을 넘게 떨어지셨다.
건방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수동적 자세로 취준을 해야겠다.
나 자신을 찾기로 했지만, 여전히 무서웠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은 들었지만, 마음 한켠에 불안함은 없어지지 않았었다. 나는 엄마,아빠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는 편이다. 말하면 불안함이 덜어지지 않을까 TV보고 있는 아빠한테 대뜸 '나 취직 못하면 어쩌지?' 라고 물어봤다.
아빠 : 할거야~ 못하면 어때. 또 도전하면 되지.
나 : 학부 때부터 밤새가며 방학도 헛투루 쓰지 않고, 상도 받고, 같은 직무를 향해서 공부해왔어! 누구랑 비교해도 자신있는데 이쯤되면 나 뽑아줘야되는거 아냐?'
.....
아빠 : 그건 좀 건방진 생각인데?
...
솔직히 좀 놀랐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다른 집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은 우쭈쭈를 쉽게 해주지 않는 스타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반응은 무섭기까지 했다.
아빠 : 너만 준비됐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생각 안해?
아빠까지 이렇게 말하니 처음엔 정말 속상했다. '맞아, 우리 딸 노력 많이 했지'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팩트를 연이어 말씀하시는 아빠의 말에 점점 슬퍼졌다. 그냥 어느 취업 시장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은 내 노력을 아빠는 알아주길 바랐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나의 건방짐에 대한 것이었다. 울면서 아빠한테 내가 노력한 것이 이렇게 많은데 라고 또 한 번 어필했지만 어림없었다. 아빠는 그건 건방진 생각이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미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어떻게 열심히 준비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열심히했고, 그러니 나를 뽑아줘야지! 왜 안뽑아?' 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건방짐에 부끄러웠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는 4년의 시간동안 교수 채용에서 떨어지셨다. 교수가 되기 전까지 일주일에 강의를 10개 넘게 하셨고, 외부 강의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고작 취업 준비 시작한지 3개월 된 애가 저러고 징징대고 있으니.. 그러실만 하다.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빠가 그래도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여전히 1% 정도 남아있다.)
모두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힘든 취업 시장이었는데 나 또한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나를 뽑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저 건방짐은 내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나를 더 포장하다가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더이상 노력하기 싫어, 이 정도 했으면 됐잖아, 대충 좀 뽑아줘롸!
이런 마음 가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건방짐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했다'고 하는건 절대적이지 않고, 언제나 상대적이긴 하다. 현재 우리 모든 취준생은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취업은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이고, 맞는 회사가 있다고 하는 것 같다. 기왕이면 내가 모든 곳에 알맞은 사람이고, 그 때가 지금이었으면 좋겠지만 조급함을 갖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다른 방식으로라도 하고 있다면 언젠가 알아주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적극적인 수동적 자세의 모순적인 준비 태도가 되었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한 길을 나아가다보면 누군가 내 손을 데리고 가줄 것이다.
아직 하반기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나의 다음 취준에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마음가짐이 생겼다. 취업이라는 문에서 채용자들이 나를 알아봐줘야 하기에 수동적일 수 밖에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서 시간을 '취준'에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없다. 만료되면 자격증 갱신해야하고, 포트폴리오 다시 만들어야하고.. 시간이 없다. 하지만, 그 준비하는 시간 조차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쯤되면 정신승리인가..?)
아무튼 취업으로 뚝 끊긴 나의 인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연속선상에서 취업을 만났으면 한다. 취업 준비를 하는 입장에서 읽는 누군가가 읽고 공감하고 함께 이런 자세를 갖게 되면 기쁠 것 같다:)
얼마 전에 문명특급의 재재님이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말씀하신 것이 위로가 되어 같이 남기고 글을 끝내고자 한다.
오늘도 누군가 취업 일기를 찾아서 공감하고, 위안이 되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