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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Jan 14. 2021

<하루는 이유없이 행복하고, 하루는 이유없이 우울하다>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하루는 이유없이 행복하고, 하루는 이유없이 우울하다>

인생에 이유를 찾지 말자. 오늘은 수요일. 월요일 아침, 한 주를 시작하며 책상 앞에 써붙인 글귀다. 처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게 되고 또 그 책이 너무 큰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팔려나가면서 소소한 밥벌이가 되어줬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어이없게도 정말 나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글쓰기가 재밌었다. 흔한 창작의 고통도 없었다. 한 달 마음먹고 쓰면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생산해낼 수 있었고, 한동안 그 글들은 한 문장도 빠짐없이 그대로 책이 되었다. 역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모든 글들이 많이 읽히진 않았지만,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이상 공부 잘하는 사람이 멋있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들을 잘하는 사람이 멋있었다. 잘해서 누군가한테 뽐내서 칭찬받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건데, 그걸 또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내 눈엔 그렇게 멋있었다. 내게 그들은 삶이라고 불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전장의 영웅이었다.


옷 입기를 좋아하다 쇼핑몰을 차린 친구, 스무살 때 독일 한 번 갔다 오더니 그 나라 맥주 맛에 반해서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해 지금은 성수동에서 작은 양조장을 운영하는 친구, 그들의 삶은 본능을 따랐고, 그 용기가 내겐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 말고, 글쓰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마치 내가 그 운명을 갈고 닦아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야 하는 숙명이라도 타고난 것처럼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여타 취미와 달리 웅장한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온다.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한 번은 운명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사는 동안 숙명이 될 것이고, 거절하게 된다면 우린 또 다른 운명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선택의 기로 앞에서 시험받고 있다. 한 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야겠다 다짐했던 어린 마음이 점점 더 시험 받고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정말 글이 아니면 안 될까. 글이 아니면 내 인생은 의미도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 이틀 보내고 한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다 결국 반년이 지났다. 매일 아침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뭐라도 한 줄 쓰던 습관은 이틀에 한 번으로 그 빈도를 줄였고, 나중에는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마지노선으로 일주일에 한 번. 어떻게든 글쓰기를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글이 어렵고, 글이 힘들다. 잘 쓴다는 것과 많이 읽힌다는 것이 정비례하지 않는 예술의 세계에서 앞으로 내가 하는 예술과 감성이 세상의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고민만 하면 책상 앞에 앉기가 두려워 속이 메슥겁다.

 글 쓰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글이 좋으면 그만이지. 내 글이 사랑받든 그렇지 않든 어떤가. 내가 좀 쓰겠다는데. 어제 밤까지 비관적이었던 마음이 오늘 아침엔 대단히 낙관적이다.

 그래서 하루는 이유없이 행복하고, 하루는 이유없이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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