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시의 맛
시인은 마음의 거울로 출발하기 때문에 시인의 마음으로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할 때, 삼라만상의 아름다움과 혹은 아픔, 슬픔, 그리움, 사랑 등의 목록들이 독자들에게 심금을 울려주고 자극을 주는 것이기에 가슴을 적시는 파문의 물살이 되기도 하며 더러는 가을하늘과 같이 투명하고 환한 풍경이 되어 다가올 때 시적 감수성은 자극의 깊이를 넘어 화려하고 미감(美感)으로 독자의 오감을 움직이는 것이다.
단순히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시인 본인 당사자가 시의 중심이 되는 화학적 변화를 나타내는 시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사물과 사물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신선한 색다른 변모로 변할 때, 시의 맛깔나고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인마다 개성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부드럽고 개성의 시적 묘미가 있는가 하면 다소 딱딱하고도 견고한 표정 등 다양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어느 쪽이든 시의 개성과 발성은 희망과 꿈 그리고 아가페적인 사랑의 체온이 담아질 때, 비로소 시의 상승의 가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2. 문법의 시작
시인마다 시를 대면하는 방법은 다르다. 직핍(直逼)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구사하는 작가가 있다 한다면, 비유의 패각(貝殼)으로 완전히 다르게 시적 의미를 발굴하는 시인도 있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이든 자신의 개성에 따라 작시(作詩)의 방법은 달라지며 이에 대응하여 시의 성격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시가 감각이라면 이는 시인의 표현에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필수요소이다.
3. 순수 신선한 맛
시는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의 확충을 꾀하고 응축시켜서 감동을 유발, 논리적 정치성-
구조의 통일성을 갖추어야 하기에 감동의 요인은 사실에 근접하여야 하며 과학적인 근거를 의미에 내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징의 효과, 혹은 비유의 적절성, 적재적소에 배치가 될 때, 비로소 잘 지어진 한 채의 성이 완성되는 것이기에 상징은 감춤도 아니요 드러냄의 성질도 아니요 반 투명성(translucency)에서 결국에는 애매성(ambiguity)의 의상을 갖추는 조직이라 이 특성에는 시는 마침내 질서의 예술이 된다.
다시 말해 봄을 말하기 위해서 결코 봄의 재료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봄의 이미지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봄은 꽃, 자연, 비, 등으로 출발하게 된다.
4. 희망의 마음
절망은 희망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면, 희망을 절망의 토대 위에서 길을 만들게 되듯이 희망의 순서를 대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희망은 인내하며 인내하고 또 사랑을 위한 방법을 내포할 때, 비로소 시의 가치는 고귀한 이름을 득(得 )할 수 있다.
시를 읽고 본다는 개념은 희망을 읽는 일이며 사랑을 읽는 일이라면, 더불어 따라오는 꿈과 희망, 소망의 그림자는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의 소용(所用)이 있기에 활력과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시는 의식의 높은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이라면 알아야 할 것이다.
눈앞이 아찔한 순간에도
잠시 정신 차리자고 속삭인다.
여전히 하늘 떠 있는 강물 위를 볼 때
늘 희망은 그 자리에 있다.
-중략-
<희망> 중에서 <졸 시>
희망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일상은 아픔과 시련, 고난이 있을 때 가능한 역설적인 생각이나 즐거움이나 행복 속에서는 희망의 이름이 부재할 수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 역설의 장르는 늘 대기 상태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엿보지만, 인간이란 희망의 가까움을 신념으로 키우지 않으면서 탄식만 길어지는 경우가 절망에 압도당하거나 포기하거나 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고”의 다짐이 있기에 희망의 싹은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기회를 다짐하는 경우보다 탄식이 길어지면 하늘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경우가 더 많고 묘연해지는 일이지만 신념은 이런 처지(포기 등)도 앞을 주시하는 일면 “늘 희망은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다.라는. 말에 바로 인자라고 하는 것이다.
5. 희망 꺼내기
솔바람이 한 줌 새벽
까칠한 삼베옷이 맞는 여름
상큼한 솔바람 영혼이
콧바람 불며 마중하네.
-중략-
<여름> 중에서 <졸 시>
솔바람은 상큼한 기운을 가져오는 사물 이미지이다. 이 바람이 아침을 휘돌아 나가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삽상(颯爽)은 가히 최상의 기분을 장악하게 된다.
마치 ”깔깔한 삼베옷“의 서늘한 감촉과 ‘솔바람’의 만남은 시원한 정서에서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 이미지로 부각된다
이는 한여름 더위와 상반되는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가드는 것이다.
‘까칠한 삼베옷’은 ‘영혼’을 말해 주듯 하며 ‘콧바람 불며’ 신선한 솔바람이 불어와 영혼을 깨우고 마중한다는 기분은 매우 인상적으로 의식을 자극한다.
햇살 좋은 날
찬란한 만추에다
축 처진 마음 꺼내 갈 하늘에 쏘이며
고개 숙인 겸손의 계절이 날 부른다.
-중략-
<가을날> 중에서 <졸 시>
6. 에필로그 –꿈의 자연
시는 마음을 그리는 풍경화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 가는 시인 개개인의 상상이 빚어내는 소재라 한다면 이를 어떠한 기교로 표현할 것인가는 시인 자신의 재능에 귀속되는 것이다.
문학적인 상상은 현실의 상상과는 다른 차원의 깊이가 있기에 자신의 삶을 축약시킨 것들일 수도 있으며 나름대로 깊이가 있고 오랜 습작의 소산으로 돌릴 수 있는 이유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소재와 기능이 우수하고 개개인의 체험이 상상과 결합한다면, 그가 빚는 시는 탁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언제나 시인 개인의 상상은 많은 재치와 사물의 수용에 감각적인 특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봄에 느끼는 생동성에서는 의욕이 분출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고 여름에는 편안한 표정으로 사물 대면하기가 이채로워야 한다
물과 바다를 재료로 떠나는 여행이 조급하지 않아야 하며 한가로움을 주는 인상이라면, 가을의 깊이는 심사(心思)한 사색의 길이 열리고 색깔의 자유가 편안해야 한다.
그리고 겨울은 백색으로 포장된 이미지와 성주-
즉 꿈을 꾸는 성안의 모습을 평화와 아늑함을 주면서도 따스함이 따라오는 그런 투명의 시를 그려야 된다는 논점이다. 그러나 꼭 이렇게 그리라는 주체는 없는 것이다. 개인의 차이에 따라 꿈과 자연의 조화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따라 달라지기에 언제나 꿈과 자연을 벗 삼아 상상이라는 언어를 탐구하고 자기만의 표정을 문자로 그리는 그림일 것이기에 이것만이 정답이라는 논조는 없다. 자신의 거울을 만들어 투영하고 사회적 풍경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창조주일 것이다.
결국에는 꿈과 자유, 풍경화를 자기만의 개성의 이름으로 나타날 때만이 비로소 자기만의 성(成)을 구축할 수 있고, 여기에 완전한 성주의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꿈과 자연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노력의 모습들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논지를 말하며 에필로그 한다.
2024. 05.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