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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질서와 자리 찾기]

시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by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KakaoTalk_20251017_094029723.jpg [쉼표가 있는 필자]

왜 시를 제작하고 무엇 때문에, 읽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 앞에 시인은 쉽게 정답과 입장 논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시를 찾아가는 길에는 많은 방법이 놓여있고, 또 시가 갖는 광범위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의 방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결과로 혼동을 가져올 수 있고, 존재의 위치를 감지하지 못하는 우려 속에 빠지는 맹목의 발길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의 그릇에는 한 눈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의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나치게 넓은 공간에서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기에 지각 능력의 회복은 지극히 한계적일 것이다. 마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운전자의 모습은 어찌 보면 타인의 음성에 의존하면서 목적지를 향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시 쓰기는 결코 과학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암시 혹은 자각에 의한 영감의 획득- 오히려 영매(靈媒)에 의존이 더욱 친근할지도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자기에서 자기로 돌아가는 방법의 모색에서 광활한 우주의 길조차 내 것이 되는 방법- 시는 그런 자리에서 나타나는 신기루 찾기의 길일 것이다.

2. 하나의 기억


시적 표현은 과학이 아닌 과학이 들어있다. 정치(情致)한 논리 이전의 논리가 숨어 있고 자유로운 사고의 기저를 통해 사유의 깊이를 철학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때문에, 과학이나 철학조차 은유로 포장하여 전달의 임무를 수행한다.

데이비드 봄은 감각이나 사고에 의해서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나타난 질서(explicate order)’ 그 배후에 있으면서도 분단도 경계도 없이 유동적인 관계를 이루는 전체를 ‘내장된 질서(implicate order)’라 부르고, 후자로부터 의식과 물질이 전개해 온다고 생각한다. 시는 나타난 질서이기보다는 오히려 내장된 질서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거기엔 미로와 같은 길을 수없이 만나야 하는 부담이 다가오기 때문에 시의 숲은 때로 어둠에 감추어진 존재일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꺼내고 어떻게 표현하는 가는 전적으로 시인만의 개성이 해결하는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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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금요저널 주필. 칼럼리스트. 대중문화평론가 전(사) 한국 한울문학 예술인협회 회장 3년 역임. 한국 예술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작가나 시인이 되고자 하시는 분만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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