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를 쓰는 마음
시를 쓴다는 것은 마음이 정화된 상태일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심성의 표현이 시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시는 곧 시인 자신으로 돌아가는 호소에 머물게 된다. 물론 글을 쓰는 행위는 때로 독자에게 스스로 보여주지 않으려는 발상- 이를 낯설게 하기라고 말한다. 위장하고 숨김이 있을지라도 결국 시의 형태는 분석하면 곧바로 시인의 시적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시는 정직하고 깨끗하면서도 순수한 함량의 정서를 담아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그렇다면 시는 곧 삶의 모습에 거짓이 없는 정서 상태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는가의 도덕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시인은 언제나 아름다움의 중심에 서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고 더러는 우둔함처럼 보이는 경우도 직면하게 된다. 다만 다가오는 운명을 순진과 순수로 포장하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희생정신이 시 정신의 요체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이기적인 것이나 나를 앞세우는 것이 아닌 아가페적인 태도에서 시의 숨결은 다가오게 된다.
고영신의 시에는 그런 대화가 다가온다. 부드럽고 순수하고 투명했을 때, 시가 된다는 예증을 보이는 시인 고영신의 시적 인상은 그렇게 시작된다. 논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귀를 열 계제이다.
2. 시와 감각성
시의 감각은 시인의 감수성과 연결되면서 시인의 재능으로 귀속된다. 때문에, 시적 완성도는 얼마나 명쾌한 시적 성공을 했느냐가 직결로 갖게 된다. 다음에 인용하는 시에는 시인의 감수성이 화려한 개화로 다가온다.
겨우내 하고픈 말 참았던 개나리
잔뜩 끌어안았던 수다거리 터트리려다
아직 할 말 남았다며 입을 막는 춘설에
노란 입 삐죽거리며 쫑알댄다.
해님은 어디서 뭘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서둘러 이사한 팬지의 재채기 그 소리에 놀라
가로수에 눌러앉은 봅 눈이 한 움큼 쏟아진다.
<춘설>에서
시를 제작하는 일은 감각적인 에스프리가 필요할 것이다. 재치의 농도는 곧 위의(威儀)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날 꽃들의 분주함과 의인화로 처리한 꽃들의 몸짓에는 웃음과 친근 미가 발동되기 때문이다.
이는 봄의 정서에 의도적인 흥미가 유발되면서 대상에 생동감을 줄 뿐만 아니라 독자의 미감에 더욱 상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팬지의 재채기’ ‘봄 눈이 한 움큼 쏟아진다.’는 시적 감각성은 시인의 행로에 더욱 좋은 징조로 나타날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답안이 된다. 이런 기교는 언어의 내포에서 파롤(parole) 즉 connotation이면서 이는 시인의 언어 감각에서 새로운 의미 부여의 신선감을 유지하게 된다.
지정석은 없지만
발꿈치 들고 저마다 자리하는 민들레 홀씨
어제저녁에 내린 비에 발복 담근다.
<한가한 오후에서>
민들레의 모습을 형용하지만 아마도 바람과 연결된 시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으로 형상하여 발목을 담그는 모양이 비와 연결되어 의미의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친근한 정서의 유발을 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생동감 있는 비유적 장치가 살아나는 것 같은 묘미에서 그렇다는, 예기다.
3. 자화상 그리기
인간은 자화상을 그릴 줄 알고 또 자화상에 감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자기라는 모습에 지대한 관심을 보내게 된다. 이른바 나르시스의 이야기는 자기애(自己愛)에 대한 소회였지만 나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는, 결국 자화상의 확인에서 출발하게 된다.
나는 곧 우주의 중심이고 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끌고 살아가는 일은 힘겨운 고통이 따르고 신산한 고비가 지속적으로 다가온다 해도 이를 헤치고 비로소 나를 확립하는 일은 곧 자기완성의 일을 이룩했다는 의미에 도달한다. 시가 단순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인 기능을 완전히 제거하기엔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동 또한 인간의 순수한 심성과 무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애(自己愛)는
영원한 숙제이자 풀어나갈 과업일 수밖에 없다. 나를 아는 일은 생의 영원한 숙제이자 과업이기 때문이다.
방콕 카오산 로드 거리에
어릴 적 내가 서있다.
···(중략···
1개의 터널을 누런 액체가 오고 갔던 흔적
표정 없는 얼굴
손금마다 들어앉아 선명한 때 자욱의 손이
내 앞에 펼쳐진다.
때 낀 손에 백 100 바트 쥐어 주니
동그란 두 눈이 얼굴 반을 차지하며
화들짝 놀란다.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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