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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할미 Sep 25. 2024

갑분 글로벌 패밀리의 추석 파티



 함께 모여 먹고 떠들기 좋아하는 친정집 5남매. 추석날 점심은 판이 더 커진다. 평소 얼굴 보기 힘든 조카들까지 총집결하기 때문이다. 장소는 분당 언니네 집. 언니는 해마다 추석과 설날 점심 모임을 베푸는 K-장녀다. 행사의 구심점은 비교적 건강하시고 걸핏하면 벌떡 일어나 덩실~  춤추는 97세 친정 엄마시다.   

   

 최연소 참석자는 지난 2월 태어나 지구살이 7개월 차인 정 아무개군. 내 남동생의 손자로 등장하자마자 올 추석 엔터테인먼트의 꽃으로 등극했다. 9.7kg의 투실투실한 몸을 꿈틀거리다 단번에 뒤집기 신공을 펼치는 녀석의 재롱에 모두들 좋아 죽는다.      


 캘리포니아에 1년 연수 차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조카 부부의 초딩 딸은 줌 화면에 나타나 외갓집 추석 모임을 놓쳐 원통하단다. 곧장 삼촌 (사실은 5촌), 이모들과 단어 맞추기 게임, 행맨에 열을 올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인터넷 연결이 고르지 않아 벼르던 온라인 봉고 게임을 포기하고 교신을 끝내려던 순간, 조카 손녀는 화면에 “I hate to say good-bye.”를 쓰며 울먹인다. 모두들 놀라 행맨 게임에 재돌입, “학교는 재밌지만 할머니표 음식이 먹고 싶다”며 태평양 건너편에서 심한 향수병 증세를 보이는 10살 초딩. 달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추석 모임엔 ‘외빈’ 두 사람도 참석했다. 내 딸의 인도인 친구 리카와 내가 작년 얼떨결에 입양한 미국 아들 KJ다. 지속가능 경영학을 전공한 프로페셔널인 리카는  십여 년 전 뭄바이에 유학했던 내 딸의 소울 메이트. 이번에 추석연휴에 휴가를 맞췄단다. 추석 아침엔 우리집 차례에도 참석해  조상님들께 술잔을 올리기도 한 사이. 점심 모임엔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어여쁘게 등장, 환호를 받았다.

     

 내 새(?) 아들 KJ는 49세, 로스쿨교수 겸 변호사다. 이번 가을학기에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 타운에 있는 4개의 미국 대학 중 한 곳에서 가르치기 위해 왔다. 그가 워싱턴 D.C. 에서 한국어 과정을 수료 중이던 작년 11월 추수감사절 시즌 내게  한글을 배우러 서울에 온 게 인연의 시작.     

  

 언니가 준비한 갈비찜과 조기구이, 토란국에 여동생들이 가져온 육전과 애호박전, 고추전, 동그랑땡과 냉채에 송편까지 차려졌다. 나도 갈릭버터새우구이를 가져갔다. 뷔페 형식으로 각자 접시에 덜어 거실에 쭉 늘어놓은 식탁에 앉아 먹는 스타일. 감동하기 전문인 KJ, “Amazing!”을 연발하며 사진 찍기 바쁘다. LA에 사는 친어머니께 그리고 여러 나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란다.    

    

 리카는 인도 음식인 알루 파라타와 탄두리 치킨을 구워왔다. 알루 파라타는 감자를 듬뿍 넣은 납작 통밀 빵. 내 딸의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그녀가 추석날 새벽 5시에 한국 주부들보다 더 먼저 일어나 혼자서 무려 20장을 구워냈단다. 사이즈는 시판되는 통밀 또띠야 정도인데, 한 입 베어물면 인도의 만능 스파이스 믹스인 마살라 향이 가득하다.      


 탄두리는 인도식 화덕. 근데 화덕 없이 어떻게 탄두리 치킨을 구워 왔을까? 먼저 토막 낸 닭고기에 치킨용 마살라 양념 가루를 골고루 바르고 전자렌지에 반을 익혔단다. 그 다음 에어 프라이어에서 나머지 반을 살짝 탄 듯이 익히면 감쪽같은 탄두리 치킨이 완성된다나. 서울에 도착한 날 우리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할 때, “뭐든 만들 수 있으니 드시고 싶은 인도 음식을 말해 주세요”라고 한 그녀에게 내 남편이 주문한 음식이다. 다음에 올 때는 인도 요리 1일 클래스를 열어도 될 것 같다.     

 

 KJ는 무슬림이다.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동그랑땡이나 고추전을 빼고는 모든 음식을 잘도 먹어댄다. 국제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로 예전에 베이징, 샹하이, 홍콩 등지에 9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어 아시아 음식을 두루 좋아한다. 내 남편이랑  남동생과 친해지고 싶다며 자신이 일하는 송도 글로벌캠퍼스에 초대하기도 한다. 잘 먹고 잘 떠드는 친화력 덕분에 내 조카들과도 하하호호!     


 아기까지 총 21명이 모였으니 설거지가 태산이다. 음식을 마련한 이들은 이제부터 쉬는 게 추석날의 규칙. 조카들이 팔을 걷어 부친다. KJ와 리카까지 합류한 다국적 설거지팀, 부엌이 떠나가게 웃고 떠들며 놀이하듯 신명나게 설거지를 해낸다.    

 

 다음은 과일을 먹으며 선물을 소개할 차례. 여동생들이 홍삼이랑 참기름, 들기름 세트를 안긴다. 나는 토하젓과 낙지젓갈을 나눠준다. 조카들이 할머니께 ‘봉투’를 드리는 순서. 극구 사양하는  친정엄마 때문에 봉투 밀당이 한참 계속 된다.       


 리카는 뭄바이에서 가져온 즉석 인도 커리랑 풋크림 선물을 돌린다. KJ가 코스트코에서 사온 초콜릿과 프레첼을 모두 함께 나눠먹는다. 오늘의 만남이 너무 재밌다며 다음 가족 모임은 언제냐고 묻는 KJ가 귀여워진 친정엄마, 유창하게 “I Love You”를 외친다. 돌발 고백에 “I Love You, Too.”로 화답하는 KJ.  

    

 오늘 우리 5자매, 그러니까 나와 세 자매, 그리고 남동생의 아내인 올케 사이엔 의논할 두 가지 사안이 있다. 첫째는 위치추적기를 친정 엄마께 장착하는 것. 얼마 전 추석맞이 퍼머를 하러 미용실에 간 엄마가 8시간 동안 귀가하지 않아 온 집안이 초비상 상태에 빠졌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남동생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자 즉시 경찰이 출동했다. 조사 도중 경찰은 97세 노령 어머니께 스마트폰이나 위치추적기를 달아드리지 않은 남동생 내외를 야단쳤다고 한다. 청각 장애인 엄마는 보청기를 싫어하시고 스마트폰 사용조차 힘든 처지.  하지만 잘 걷는 엄마는 하루 한 번씩 산책을 나가신다. 결국  스마트 태그라는 장치를 아들과 며느리의 스마트폰에 연계시켜 엄마의 위치 파악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두 번 째는 10월 중순부터 한 달 간 들락날락 이어질 몇 개의 여행 계획이다. 강원도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싶다는 친정엄마의 소원을 들어드리려던 차, 이왕이면 다른 지역도 며칠 씩 방문하기로 바꾼 것이다.    

  

 속초에서 4박5일, 서천에서 2박3일, 수안보 온천에서 2박3일, 전라도 신안 섬에서 3박4일로 여행을 잡고, 당일치기 드라이브도 2번 쯤 하려한다. 일정마다 5자매가 함께 하기는 어렵지만, 되도록 여럿이 함께 하는 게 엄마를 기쁘게 할 것이다. 여행비는 각출하고 조카들의 협찬도 사양하지 않기로. 물론 남편들이나 조카들이 여행지를 일부 동행하는 것도 환영한다.    

  

 엄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선 일정이나 동선을 복잡하지 않게 짜는 게 관건이다. 엄마가 원했던 여행을 버텨낼 건강이 유지되시길 자매들은 간절히 바란다. 지금부터 살아있는 모든 날들을 금쪽 같이 아끼며 즐겁게 살아내기로 결심한 엄마! 엄마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자궁가족’의 5자매도 오래 함께 웃으며 오래 함께 놀기로 굳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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