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약사 Aug 03. 2022

내가 꿈꾸는 약국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약국 매물을 접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아 떠나보내기를 여러 번,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원하는 약국상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본인이 원하는 약국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던데 그 말이 정말 맞더라고요. 기준이 있어야 남들 말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방전도 적당히 받고 환자들과 상담할 시간적 여유 있는 동네 약국을 하고 싶어요.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약국을 하는 게 저의 꿈이거든요.


예전에 처방 조제 위주의 업무만 반복하는 대형 문전 약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종합병원 근처에서 일하면 다양한 처방을 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처방전이 많아서 그만큼 업무의 강도도 높거든요.


처방전이 많이 나오면 돈을 많이 버니 좋은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곳은 권리금이 비싸기도 하고.. 너무 바쁘다 보니 환자들과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약국상은 다르니 이런 곳을 선호하시는 분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기계적으로 설명하며 약만 내주기보다는 인간적인 교감도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정확한 처방 조제와 복약 설명도 중요하지만, 소통과 상담 능력도 약사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불편한 증상을 귀 기울여 듣고 상담도 해주며, 때로는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인간적인 신뢰를 쌓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너무 바쁜 곳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처방전이 많이 나오지는 않더라도 병원 하나에 목매는 곳이 아니라 2~3개 병원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병원 하나에 약국 하나가 요즘 일반적인 모습인데 이렇게 되면 지나치게 의존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병원이 폐업을 하거나 이전을 할 경우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게 되니까요.


약국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서 처방전에 의존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의약분업이라는 제도 아래에서는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인 방문 고객이 있어야 매출도 생기니까요. 약국도 자영업이고 월세를 내야 된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처방 내역을 통해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 어떤 질환이 있는지 알 수 있으므로, 좀 더 풍성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처방전은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처방전만 바라볼 게 아니라 약국의 경쟁력도 같이 키워나가야겠죠.

 

그리고 또.. 대로변에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면 좋겠고 평수도 너무 작지는 않은 곳, 요즘은 10평 이하도 있던데 그런 곳은 너무 답답한 느낌이라 적어도 10평 이상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월세는 많이 비싸지 않은 곳...ㅎㅎ


적고 보니 엄청 많네요...ㅎㅎ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원하는 약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좋은 자리가 너 하라고 남아있겠냐고...'


네... 이게 사실이기는 합니다. 뼈 때리는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기준은 중요하니까요.


배우자를 고를 때도 다들 자기만의 기준이 있듯이, 하고 싶은 약국을 고를 때도 기준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드니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약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준을 세워두면 적어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아무 데나 덜컥 계약을 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거라 믿어요.


물론 내가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건 터무니없는 욕심이겠죠. 하지만 본인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결국 원하는 약국상에 가까운 곳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제가 습관처럼 떠올리는 말은 '될 일은 된다'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제목인데 무척 공감되는 구절이 많더라고요.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대신, 삶의 흐름을 신뢰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결국 될 일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인생이라는 게 항상 그렇지는 않은 법이니까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처럼 결국 개국에도 때가 있는 거겠죠. 그래서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고 찾아보려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국 자리는 어떻게 알아보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