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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Dec 21. 2020

나는 고스톱에서 인생을 배웠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바다를 건너는 중이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표류한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럴 때는 애쓰지 말고 힘을 빼고 기다려야 한다.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이 맞아야 나아갈 수 있는 길, 외롭고 힘들고 지쳐 울던 시간들을 보내고, 물길이 열릴 때 배는 수월하게 나아간다. 노를 놓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기에 물의 흐름을 익힐 수 있었고, 그 흐름을 따라 노를 저어 나아갈 방법도 알게 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린 시절, 고스톱에서 인생을 배웠다. 입에 착 달라붙는 ‘고도리’가 일본말이라고 대신 바꿔 부른 이름이 ‘고스톱’이다. 일본식 화투에 미국 말을 붙이면 위안이 되나? 왜 일본식 화투가 우리 문화에 깊숙이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앗! 화투는 포르투갈 ‘카르타’라는 놀이 딱지에서 기원했다. 일본이 무역을 할 때 들여가 자기들 식으로 만들어 조선말 혹은 일제 강점기에 들여왔다고 한다. 딱지에는 1년 열두 달 화초 그림이 그려져서 그 이름이 화초 딱지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아마도 이후에 ‘꽃을 던진다’ 해서 ‘화투’가 된 게 아닌가 싶다.


- 화투에 관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열두 달을 상징하는 화초 그림 딱지를 가지고 노는 민속놀이. 노름.
화투놀이는 자기에게 들어온 패의 끗수도 문제가 되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패를 추리하여 눈치 빠르게 치게 되므로 고도의 지능과 심리작전을 요하게 되며, 아무 끗수도 없이 홑껍데기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기도 하여 흥미를 진작시킨다. 이밖에도 화투는 아낙네와 노인들의 심심풀이로서 ‘재수 보기’와 ‘운수 떼기’를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오랜 세월 동안 투전이라는 도박놀이가 있었으나 자연 소멸하고 화투치기로 대체된 감이 있다. 이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까닭으로 일본풍이 짙다 하여 항일·반일의 민족적 감정으로 일제 말기와 광복 후 몇 해 동안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그 뒤 조금씩 사용되다가 현재는 가장 성행하는 대중 놀이로 정착되었다.
이는 상점에 가서 화투 한 짝만 사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손쉽게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원래 놀이의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박놀이로 변질되어가는 흠이 없지 않다.
-참고문헌-
『한국 민속 대관 4-세시풍속·전승놀이-』(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의 민속』(김성배, 집문당, 1980)


열두 달을 상징한 그림을 넣었다니, 그야말로 인간의 흥망성쇠가 담긴 것인가! 고스톱에는 꼼수가 있다. 이것을 잘 캐치하고 임해야 멘털이 무너지지 않는다. 기본은 운빨이지만, 운빨에만 기대지 않는다. 일단 하는데 까지 해보는 발버둥을 전제로 한다. 피씨 게임에서 처럼 자신이 일구던 중 행운이 터지면 흥분감도 터진다. 단언컨대 이 흥분감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적당한 재미로 여기면 놀이가 되지만 몰두하면 이성의 끈을 놓게 돼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상하게도 우리 시절에는 고스톱을 많이도 쳤다.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고 청소년들도 친구 집에서 고스톱을 치고 친인척은 물론 이웃사촌끼리도 고스톱을 쳐댔다. 아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특별한 놀이 문화가 없어서였을까? 이런저런 놀이문화가 있었음에도 그 재미가 쏠쏠해서일까? 아마도 자극 때문일 수 있다. 지금의 컴퓨터 게임 못지않은 자극, 고스톱이 본좌였다. 인베이더, 겔러그, 테트리스가 함께 하던 시절에도 고스톱은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냐, ‘스톱’이냐 기로에서도 ‘못 먹어도 고!’였던 것이다.



두 달 전, 언니네 집에 갔을 때였다. 조카가 화투를 내왔다. 어릴 시절 명절 때 고스톱으로 떠들썩하던 풍경이 그리웠던 건지, 할아버지와 이모랑 고스톱을 쳐보겠단다. 할머니와 엄마가 개평으로 치킨과 탕수육을 시켜준 것도 한몫했으리라. 취업 준비에 지친 녀석이 고스톱으로 마음을 달래려는지, 판을 깐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나 봤지 요새는 명절 때도 도통 볼 수 없는 고스톱인 것이다. 선수로 조카와 함께 조카의 할아버지인 나의 아버지, 이모인 나, 엄마인 나의 언니가 등판했다. 관망자로 굿이나 보고 떡을 먹겠다던 형부가 야금야금 점수를 계산해주며 100원씩 뜯어먹었다. 할머니인 나의 어머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스톱 배우기는 싫으시다며 구경은 베테랑이시다.



정석으로 고스톱을 치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치고받고 싸는 나의 현란함에 혼란을 겪으신다. 고스톱은 우리의 수다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참 많이 늙으셨다. 패를 던지는 힘이 예전만 못하시다. 패를 넘기며 딱딱 붙는 소리도 약해지셨다. 보약 한 재 해 드려야겠다.


결과는 깔끔했다. 도신이 내게 붙었다. 상한가를 묶어놨기에 망정이지, 매번 상한가를 넘어선 대박 사건이었다. 하지만 고스톱의 막판은 언제나 씁쓸하다. 개털 인간들의 반란! 판을 엎고 도망가기 일쑤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빙다리 핫바지‘, ‘손모가지’ 론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자잘하게 내 점수를 계산해주며 근근이 떡고물을 챙기던 형부의 주머니가 실속으로 짤랑거린다. 결국 관전의 재미에 빠진 어머니 손에 떡고물은 쥐어진다. 평소에 수시로 찔러주던 용돈보다도 더 애틋한 건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 때문이겠지?

 


모처럼 고스톱을 치며 많이도 웃었다. 돈을 딴 승자의 웃음도 있고, 그 돈으로 치킨과 피자를 먹는 패자의 만회도 있고! 더러 ‘인 유어 포켓’의 인간성을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도 있다.


고스톱을 치면서 떠올랐던 기억들, 그러고 보면 나는 고스톱에서 인생을 배웠다. 고스톱은 술을 마셔봐야 알 수 있다는 인간의 속성을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인생, 아무리 머리 굴려도 운빨이 따라야 살 수 있다는 것과 한편으론 재수 없게 ‘양박에 흔들고 쓰리 고’의 위기에서도 누군가의 ‘쇼당’으로 기적을 맛보기도 한다. 아무리 개판인 판도 새판이 되면 잊어야지, 지난 판에 연연하면 뒤끝도 안 맞는다.  열심히 치다 보면 ‘빛 볼 날’도 온다. 또한 누군가 치고 달려 나갈 때 다른 이들과 조율하여 눈치껏 한 마음으로 그를 제재하고, ‘고’가 선언되면 나머지들은  쩌리의 힘을 합쳐 앞선 자를 뒤집어 씌울 작전에 돌입한다. 물론 고수들이야 어떤 패가 상대 손에 들려있는가를 파악하지만 초자들은 일단 던지고 본다. 그로 인해 상대에게 교란을 일으켜 귀한 패를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얻어걸린 패로 ‘고’를 부른 자를 쓰러뜨린다. 여하튼 고스톱 판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야 열심히 일군 점수를 잘 계산할 수 있다. 차려진 밥상도 못 찾아 먹고 어리바리하다가는 먹잇감이 된다. 매번 상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표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평의 미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스톱판에서도 나름의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성이 바닥이면 인성도 바닥으로 치부되기 쉽다.





연말이 되니, 엉뚱하게도 고스톱을 치던 시절이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그 시절에 연말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제 같은 밤을 보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이들의 결과물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속 도심의 거리는 흥분 그 자체였다. 카드를 직접 만들어 보내던 때였다. 좀 더 고급스러운 카드 제작을 위해 금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나중에야 아트박스에서 나오는 입체 카드가 고급의 상징이 되었지만, 직접 손으로 쓴 글자의 입체적 눌림이 담긴 메시지에 감동받던 시절이었다.



이제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의 이미지에 갇힌 데이터지만 이따금 데이터에서 로딩된 추억들로 오감은 그때 그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화투 말고도 카드로 할 수 있는 놀이도 많다. 하나의 기억이 있다면 인도 여행 중에 경험한 ‘혁명’이라는 게임이었다. 낮은 점수의 사람이 한순간에 최고가 되는 그야말로 ‘혁명’은 내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카드는 마술놀이 수단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그야말로 서양에서는 친숙한 놀이 딱지다. 하지만 엄청난 위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카지노가 바로 대표적이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는 이들의 이야기를 우린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한 번 빠지면 그야말로 수렁인 것이다. 내게도 카지노를 구경한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 현지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였다. 네팔 카지노에 구경 가보라는 여행자들의 제안에 몇몇이 바로 달려가 본 경험! 돈 따오면 저녁을 맛있게 사기로 했다. 그런데 절대 걸어 들어가지 말고 택시를 대절해서 가라는 충고! 화려한 옷이야 외국인 여행자라서 이해해주지만 지질한 도보는 금지라는 것이다. 나와 동행한 분들은 신부님이 되기 전에 마더 테레사 봉사를 하던 부제님과 간호학교 학생들, 모두 인도 여행에서 마더 테레사 봉사 경험이 있지만, 봉사 이후 게스트 하우스에서 부어라 마셔라 경험들도 갖고 있었다. 나와도 농담 따먹기 코드가 맞은 사람들이었다. 그때 카지노에서 도신이 붙은 건 부제님이었다. 블랙잭이 주는 재미도 있었지만, 일단 고급스러운 뷔페가 공짜라는데 흥분했다. 그러니까, 여행자들이 카지노에 구경 가서 돈은 조금만 바꾸고 그냥 슬렁슬렁 시간 때우다가 뷔페를 마음껏 이용하라는 게 팁이었다. 이런 고급 정보는 장기 여행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여하튼 굶주린 여행자에게는 오아시스였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우린 1만 원정도를 바꾸고 일찌감치 털리고, 부제님이 3만 원 인가 5만 원 정도 따서 이후 게스트 하우스 저녁 파티에 쏜  것 같다. 내게는 카지노가 축제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이후 부제님은 신부님이 되었다. 천주교 소식지에서 발견한 그분의 사진은 여전히 개구쟁이 얼굴이다.  반가움에 얼마나 웃었던지! 너무 경건하게도 말고, 너무 경직되지도 않게, 삶을 재미로 바라보는 법을 엿본 것 같아서 어떤 강론 보다 울림이 컸다.



사실 어둠을 보지 않으면 대처할 수 없으리라. 나는 그때의 그 카지노에 대한 흥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런 기분 때문에 빠져드는구나 싶었다. 사람은 종이 한 장 차이의 결단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술 중독에, 게임 중독, 도박은 말해 뭐하리, 그 흥분을 체험으로 여겨야 할 테지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은 아마도 위험 경고등이 고장 난 게 아닌가 싶다. 또한 지루함이라는 센서 대신 흥분 센서가 유난스럽게 가동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구에게나 늪이 있다고 생각한다. 갈 때까지 가보려는 호기심 천국은 위험하다. 적당한 경지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흥분은 판단을 마비시켜 집 까지 팔아먹게 한다. 놀이가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몰입하지 않아야 한다. 놀이 삼아 즐기는 자신을 느껴야 한다. 과몰입에 자기는 물론 인생까지 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


중독에 취약한 사람들은 아예 접근하지 않아야 할 놀이들이지만 이왕 놀이를 하게 되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게임에서 쉽게 리셋하는 사람은 기술을 익힐 수 없다. 어떤 행태로든 불리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노하우라는 게 생긴다. 경험이 쌓이면 다음에 위기가 와도 대처가 쉬워지는 것이다. 인생 망쳤다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질 때도 비슷한 맥락으로 살펴보자. 일단 살아서 갈 데까지 가봐야지, 삶을 져버릴 이유가 없다. 삶이 과연 우리의 힘으로만 갈까! 운칠기삼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기술은 고작 30퍼센트만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머지 70퍼센트가 운빨 같은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오해가 있다. 30퍼센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숫자이다. 아무리 애써도 100센트 자기 힘으로 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30퍼센트에 도달하고, 나머지는 신의 영역에서 채워주신다는 뜻이다.



패가 분리해도 스톱하지 말자! ‘못 먹어도 고’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도신이 함께 하실 때가 있다. 이러니, 장려 메시지 같다. 부디 상징으로 여겨주시길! 이 겨울 연말, 힘들고 우울하다고 어두워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이다. 유튜브에서 징글벨이라도 틀고 만화라도 읽어 보자. 넷플릭스와 함께여도 좋다. 왓차든 뭐든 뒤져보면 크리스마스 영화도 많다.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움을 혼자서도 즐겁게 보내는 연습을 하자. 즐겁다 보면 힘이 생긴다. 힘이 생기면 힘겨움을 타파할 좋은 방법도  떠오른다. 여기서부터가 신의 영역일지 모르겠다. 그다음부터는 물 흐름대로 신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인생은 흥망성쇠의 시스템일 뿐이다. 너무 심각할 필요 없이 게임에 임해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현란한 기술을 익히다 보면 어느덧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내가 운까지 터지는 날이 온다. 우리 모두 그런 날을 위해 파이팅하면 좋겠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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