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 때 우리는 따뜻한 햇살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어른과 함께 있는데 울고 있다.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아니다.
숨죽여 울고 있다.
한 아이가 우는 동안
어른은 아이를 달래지 않는다
바로 아이를 울게 한 원인제공자이기에.
한 차례,
두 차례,
세 차례,
머리만 쥐어박는 게 아니다.
홑껍데기 같은 가냘픈 몸 여기저기를
어른은 제 분에 못 이겨 후려갈긴다
한 아이는 찍 소리도 내지 않는다.
눈물만 찔끔거리다
행여 떨어질까 싶어
눈물을 얼른 손으로 훔쳐낸다.
거침없이 날아오는 어른 손은 쉬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소극적으로 움츠린다.
등 돌려 덜 아프게 맞으려고 한다.
방 문은 닫혀 있다.
열고 나가도 될 제 방이다.
한 아이는 문을 열지 않는다.
밖에서 엄마와 할머니, 누나가 있을 때도
한 아이는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다.
치러야 할 숙제로 생각한다.
볼 수 없는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행여 소리로 듣고 슬퍼할까 봐
한 아이는 반항은커녕 어른에게 대꾸 한 번 하지 않는다.
묻고 싶기도 하다.
왜 이렇게까지 때려야만 해요?
하지만 한 아이는 묻지 않는다.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해진다.
누군가 물어올지 모른다.
너는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그 가느다란 가지처럼 흔들리는 몸으로 매를 견디고 있니?
그 어른은 누구이기에
너 같은 어린 영혼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는 거니?
세 걸음만 가면 열 수 있는 방문을
너는 왜 열려고 하지 않니? 왜 도망가지 않는 거니?
왜 가족이 버젓이 있는 곳에서 너는 맞고만 있니?
아이는 맞는 이유를 모른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하지만 방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엄마가 알면 속상해할까 봐, 참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들을 위해 나서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한 아이는 일찍부터 알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힘을 쓸 수 없는 어른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사회에 속하려면
자신을 가해하고 있는 그 어른에게 분노해서는 안 된다.
행여 눈이 보이지 않는 엄마가 의지해야 할 사회에서
엄마가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아이는 조용히 그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벌써부터 세상은 홀로 견뎌야 하는 곳이라고 여기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어른이 있다.
어른 같지 않는 어른, 악마 같은 그 못된 어른을
혼내줄 힘이 없는 나약한 한 어른.
한 아이를 구해올 수 있는 힘이 없는, 날지 못하는 슈퍼우먼이다.
제 한 몸 가누지 못해 허덕이며
세상에서 꺼져가던 어른이다.
하지만 나약한 한 어른은 생각한다.
적어도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한 사람은 너희들을 위해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런 어른도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오로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신이 손을 내밀며 어깨를 감싸주듯
적어도 외롭고 슬픈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한 어린아이가 세상을 견디는 중에
한 어른은 슬픈 눈으로 밤하늘을 본다.
살아야 할 이유.
아이가 견뎌야 하는 세상만큼 두려웠던 세상,
적어도 나쁜 어른들이 세상을 차지하는 일은 막아야지.
어린 영혼을 해치는 일을 두고 보면 안 되지.
어른이 되어도 힘겨운 여린 영혼 역시 세상으로 나가자 해야지.
그러기 위해 이 어른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담기 위해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전화 카드 한 장.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 카드 한 장을...] -
‘전화 카드 한 장’이라는 민중가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치유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한 아이의 슬픔을 보게 된다.
멍하니 소파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슬퍼진다.
문득,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화가 떠오른다.
그런 전화가 울린다면 나는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인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나는 일어서야 한다.
일어나 혼자 가도 되는 세상이지만.
아픔을 아는 자는
쓰러진 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비바람과 폭풍과 눈보라를 겪은 사람은 안다.
따뜻한 햇살의 고마움을!
고난 속에서 손 내밀고 걸어본 사람은 안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멀리 더 아름답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