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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Jan 23. 2020

전화 카드 한 장

손 내밀 때 우리는 따뜻한 햇살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어른과 함께 있는데 울고 있다.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아니다. 

숨죽여 울고 있다.

한 아이가 우는 동안 

어른은 아이를 달래지 않는다

바로 아이를 울게 한 원인제공자이기에.

한 차례, 

두 차례, 

세 차례,

머리만 쥐어박는 게 아니다.

홑껍데기 같은 가냘픈 몸 여기저기를  

어른은 제 분에 못 이겨 후려갈긴다

한 아이는 찍 소리도 내지 않는다.

눈물만 찔끔거리다 

행여 떨어질까 싶어 

눈물을 얼른 손으로 훔쳐낸다.

거침없이 날아오는 어른 손은 쉬지 않는다. 

아이는 그저 소극적으로 움츠린다. 

등 돌려 덜 아프게 맞으려고 한다.


방 문은 닫혀 있다.

열고 나가도 될 제 방이다.

한 아이는 문을 열지 않는다.

밖에서 엄마와 할머니, 누나가 있을 때도

한 아이는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다.

치러야 할 숙제로 생각한다.

볼 수 없는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행여 소리로 듣고 슬퍼할까 봐

한 아이는 반항은커녕 어른에게 대꾸 한 번 하지 않는다.

묻고 싶기도 하다.

왜 이렇게까지 때려야만 해요? 

하지만 한 아이는 묻지 않는다.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해진다.

누군가 물어올지 모른다.

너는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그 가느다란 가지처럼 흔들리는 몸으로 매를 견디고 있니?

그 어른은 누구이기에 

너 같은 어린 영혼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는 거니?

세 걸음만 가면 열 수 있는 방문을 

너는 왜 열려고 하지 않니? 왜 도망가지 않는 거니?

왜 가족이 버젓이 있는 곳에서 너는 맞고만 있니?

아이는 맞는 이유를 모른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하지만 방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엄마가 알면 속상해할까 봐, 참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들을 위해 나서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한 아이는 일찍부터 알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힘을 쓸 수 없는 어른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사회에 속하려면 

자신을 가해하고 있는 그 어른에게 분노해서는 안 된다.

행여 눈이 보이지 않는 엄마가 의지해야 할 사회에서

엄마가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아이는 조용히 그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벌써부터 세상은 홀로 견뎌야 하는 곳이라고 여기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어른이 있다. 

어른 같지 않는 어른, 악마 같은 그 못된 어른을

혼내줄 힘이 없는 나약한 한 어른.

한 아이를 구해올 수 있는 힘이 없는, 날지 못하는 슈퍼우먼이다.

제 한 몸 가누지 못해 허덕이며

세상에서 꺼져가던 어른이다.

하지만 나약한 한 어른은 생각한다.

적어도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한 사람은 너희들을 위해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런 어른도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오로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신이 손을 내밀며 어깨를 감싸주듯

적어도 외롭고 슬픈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한 어린아이가 세상을 견디는 중에

한 어른은 슬픈 눈으로 밤하늘을 본다.

살아야 할 이유.

아이가 견뎌야 하는 세상만큼 두려웠던 세상,

적어도 나쁜 어른들이 세상을 차지하는 일은 막아야지.

어린 영혼을 해치는 일을 두고 보면 안 되지.

어른이 되어도 힘겨운 여린 영혼 역시 세상으로 나가자 해야지.

그러기 위해 이 어른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담기 위해 스스로 치유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전화 카드 한 장.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 카드 한 장을...] - 

‘전화 카드 한 장’이라는 민중가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치유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한 아이의 슬픔을 보게 된다.

멍하니 소파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슬퍼진다.


문득,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화가 떠오른다.

그런 전화가 울린다면 나는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인가.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나는 일어서야 한다.

일어나 혼자 가도 되는 세상이지만.

아픔을 아는 자는 

쓰러진 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비바람과 폭풍과 눈보라를 겪은 사람은 안다. 

따뜻한 햇살의 고마움을!

고난 속에서 손 내밀고 걸어본 사람은 안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멀리 더 아름답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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