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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Jun 25. 2023

엄마가 되어 간다는것

첫째 아이가 한여름에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울어 젖히더니 아무것도 먹질 않는다.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니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육아 멘토이신 어머님은 밭에 일하러 가서  점심이래야 돌아오시는데 어떡해야 하나.. 아이를 업고 마당만 서성거렸다.


아이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산골에는 병원이 있을 턱이 없고, 아이를 위해 비상약을 준비해 두지도 않았는데 큰일이다. 


그렇다고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 가려면 재를 넘어 1시간을 가야 하고, 다시 큰 도로 나가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도무지 어떡해야 할지 생각은 나지 않고, 겁만 났다.


만육 개월이 되도록 아이는 추운 산골에서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그런데 추운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열이 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축 쳐지는 것이었다.



아이를 꽁꽁 싸매 업고  마당을 서성거리며 담너머의 인기척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셨다. 


아이의 상태를 말씀드리자 어른 해열제를 반으로 갈라 물에 개어 먹이라며 어른용 해열제를 찾아 주었다. 


어른용 해열제를 먹어도 괜찮은지 어쩐지 몰라 약을 받아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자식 키울 때 다 그렇게 먹였다며 괜찮다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밭으로 나가셨다.


남편 형제분들이 다 건강한 것을 보면 어머니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한 번 먹어 보지도 않았고, 모유가 적어 빼빼 마른 아이에게 어른용 해열제을 먹여야 할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고, 혹시나 어른용 약을 먹였다가 아이의 정신이 나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만 커졌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등뒤에서 점점 쳐지기 시작했다.


" 안 되겠다. 아무리 아이가 아파도 어른용 약을 먹일 수 없다"  그 길로 아이를 고쳐 업고 읍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여름 습한 날씨에 온몸에는 비 오듯 땀이 쏟아졌고, 등은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

땀범벅의 등에서 아이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고,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며 축 늘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육이오 전쟁 때에도 전쟁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를만큼  깊은 산골이었고, 산골로 들어가려면 노래재라는 높은 재를 넘어야 하는 곳이다.


재를 넘어 마을을 지나 큰 도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한시가 급한데, 왜 버스는 안 오는지... 이러다간 병원문이 닫히면 우리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군대간 남편에게는  아이를 잘 키우며 기다리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는데... 아이가 조금만 참아주면 좋을 텐데.. 


안 되겠다. 읍내까지 달려 가야겠다.... 지나가는 차라도 오면 그때 세워서 사정이야기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내방향으로 달리고 달렸다. 


마을을 한굽이 돌아 시내가 보일 때쯤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도로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버스는 그 자리에서 끼익 하고 멈추더니 문을 열고 " 아니 아줌마!!" 하며 소리를 지르려는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 우리 아이가 아파요,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온몸에 땀범벅이었고 축 늘어진 아이를 본 기사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말도 않고, 그대로 달렸다. 


읍내에 도착하자 마자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채 병원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이지경이 되도록 뭐 했냐며 호통을 쳤고,또 아이가 불덩인데 이렇게 싸매면 어쩌냐며 아이를 홀라당 벗기고는  진찰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주사를 맞히고, 다시 둘쳐 업고 읍내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등에 매달려 힘들었는지, 주사를 맞고 아픔이 덜했졌는지 아이는 잠이 들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지 ...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울퉁불퉁한 산길과 재를 넘어왔지만

시간은 저녁시간을 넘어 어둑어둑해지고, 산길을  어떻게 걷고 재를 넘어 가야 할까.......


"이대로 친정으로 아이를 업고 갈까?"  


" 안되지.. 졸업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나서 아이까지 낳은 나를 동네 창피하다며, 3년 동안 고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


 아이와 내가 없어진걸 시부모님이 아시면 또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윙윙거렸다. 그 와중에도 친정엄마의 얼굴은 왜 또렷이 떠오르는지.. 


" 그것봐라, 네인생 네맘대로 하더니 고소하다.." " 우리딸이 남편없이 아이 키우느라 힘들군아"  라는 서운한말과 위로의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다시 달려왔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풀벌레가 길가에서 울고, 이따금씩 짐승의 소리도 들렸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끊기면 주변은 일시에 조용해지고,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드서며 몸이 움찔움찔해졌다.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산골길...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커졌고, 길가의 나뭇가지에 옷이 걸리때마다 긴장하며 뒤를 돌아보고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걸어 노래재 중턱에 오르자 등뒤에 있던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했다.  아이의 옹알이를 듣게 되자 지금까지 무서웠던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 휴.. 우리 애가 살았네, 살았어. 다행이야 다행" 


등에서 아이를 내려 안았다. 아이는 웃는 얼굴로 쳐다보며 계속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를 업고 다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등에서 쉴 새 없이 옹알이를 했고, 난 답했다.  


무서웠던 길은 아이의 옹알이를 시작으로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내려놓고 보니 내 발은 상처 투성이었다. 


아!! 


이렇게 내가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장하다 !! 


나도 내 어머니처럼 엄마가 되어간다는 뿌듯함에 약을 먹고 곤히 잠든 아이 옆에서 남편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지를 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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