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초순보기 Dec 16. 2023

나에게 하루만 주어진다면?


아침 5시에 일어나, 그동안 함께해 준 가족과 이웃들에게 감사했고, 덕분에 잘 살다가 간다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는 평상시처럼 아침밥을 준비했다.  반찬은 늘 먹던 그대로 김치와 깻잎장아찌, 생선구이이다.


남편과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 밥만 먹는다.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 오늘 생애 마지막 날인데.. 무엇을 해야 할까..' ' 지금까지 잘 살아왔을까?'  ' 여한이 없을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제 와서 그런 물음이 떠오른다는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을 이내 알아채고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만 지나면 세상에서 없어질 사람에게 어떤 요구도 부탁도 없을 것인데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너희들이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였고, " 부족한 엄마였는데, 사랑해 주고 존경해 주어서 고마워". 아이들의 훌쩍거림을 모른 척 끊었다.


남편에게는  '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하고 속만 썩여서 미안해, 늘 고마웠어. ' 인사를 했다.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은 내가 오늘만 지나면 없어진다는데도 평소처럼 말이 없다. ' 혹시나 다른 여자 만나면, 말이라도 다정하게 해.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요즘 여자들은 그러면 다 도망가" 하고 충고를 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딱히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8살 때까지 걷지 못해서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혀 드렸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데, 바로 결혼을 해서 또 부모님의 은혜를 갚지도 못했다.  


그 미안함은 부담감이 되어 지금까지 묵직한 바위처럼 가슴을 짓눌러 왔다. 내일 부모님을 만나면, 꼭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래도 내일 부모님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고, 죽는다는 것이 그리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한 것뿐인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받아놓은 시간은 평소보다 백배는 더 빨리 가는듯하다. 점심은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가서 먹기로 하고, 이번만큼은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외식을 할 경우에는 남편이 늘 양보하였기 때문에 오늘만이라도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아야지 다짐을 해 놓고서는 평생을 살 것처럼 행동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날보다 손님이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초조해졌다.


"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짺.짺.짺...시간 가는 소리가 크게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 서서야 시간 가는 소리가 이렇게 명확하게 들리는 것일까. 이 소리를 일찍 알차 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집에 돌아와서 책상과 옷 정리를 마지막으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책 2권과 옷 두 벌을 골라 내일 함께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얼굴에 팩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친척들이 한결같이 물어본 말이 " 마지막 모습이 어땠어?"였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좋은 얼굴을 보여주고, 나 자신도 가장 좋은 얼굴로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


저녁시간.. 평상시처럼 저녁을 챙겨 먹고, 티브이를 보면서 웃기도 하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두렵다.  


랑하는 가족과 함께 즐거워했던 지인, 평화로운 일상, 할머니 ~~ 하고 불러주는 손주... 이 모든 것을 두고 간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무섭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가 잊힌다는 것이다. ' 잊혀야 좋은 것'이라는 말을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로 건넸는데, 정작 내가 잊힌 사람이 된다고 하니 두렵다.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자연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고, 


몸이 오그라들면서 몸서리가 쳐지며 점점 떨려 온다. 


이제 겨우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유지해 온 평상심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인정해야지, 인정해야지.... 


몸을 바로 하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 난 잘 살아왔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없다.... '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죽어 보지 않았고, 죽었다 살아났다고 해도 죽은 것이 아니기에 누구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고, 알 수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화장장에서 본 것은 몇 개의 뼛조각과 가루뿐이었고, 눈앞에서 뼛조각마저도 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부모님의 죽음은 불가피한 자연의 현상이라고는 이해할 만큼의 죽음은 아니어서 더 황망할 수밖에 없었다.  백세 시대에 75세에 맞은 죽음이었고, 예고되지 않은 죽음이어서 더욱 허망했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불쑥 찾아와서 나 조차도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맞는 것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은 지금까지의 삶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며, 산 사람에게도 타인의 죽음은 별것이 아닌 것처럼 잊히게 마련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의식을 되찾고 잠깐동안 눈을 떴다 감으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는 나를 쳐다봤다. 어머니는 산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오직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인 어머니만 알 것이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은 함께 하는데도 영원히 살 것처럼,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만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라면? 


지금까지의 일생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시간 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속도가 느껴지면서 일초 일초가 아까운 시간이었고, 상상해본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은  체험을 통해  알겠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답을 찾지를 못했다. ' 시간은 생명'인데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가 가는 길을 나도 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