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속초순보기 Feb 01. 2023

배 꺼진다. 뛰지 마라

자는 아이를 깨워 아침밤을 먹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밥을 먹지 않으려는 핑계가 왜 그렇게나 많은지, 오만가지나 되는 듯하다. 


겨우 식탁에 앉히고, 밥 먹으라고 하면 밥상 앞에서 30분 동안 한숨을 쉰다. 학교 늦는다며 어서 먹으려고 하면 밥 먹기 싫다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안 먹으면 안 되냐고 한다. 밥 먹기 싫은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먹기 싫다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배가 꺼질 까봐 뛰지 말라는 말을 밥 먹으라는 말보다 더 많이 들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먹기 싫어서 안 먹는다. 주변에는  많이 먹기 때문에 뛰는 사람도 있다.  먹고 뛰고, 또 뛴다. 


배가 꺼질 봐가 달리지도 못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8남매로 3살 터울이거나 2살 터울로 다 고만고만하였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야 키가 가 키만 하고, 가 키가 야 키만 하고, 등치도 자 등치가 야 등치 같아서, 어머니는 분간이 안된다고 했다. 


다 고만 고만한 형제들이 먹는 밥양도 고만고만하여, 누가 덜먹고 더 먹지 않았다. 반찬 하나 놓고 밥만 먹는 식사니 만큼 반찬으로 배를 채우기보다 밥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쌀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쌀을 감당 못하여, 물에 말아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늘 배고픈 날의 연속이었다. 


아침밥을 먹으면 우리 형제들은 마당으로 나가 뛰어놀기 시작했다.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뛰기 시작하는 우리를 보고 아버지는 " 배 꺼진다. 뛰지 말라"며  담을 넘어 보시며 큰소리로 고함을 치셨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우리는 마당을 나와 뛰어놀았고, 다시 아버지께서 " 배 꺼진다, 뒤지 말라"를 말을 하신다. 그러면 도로로 내달려 한참을 뛰어놀다 집으로 돌아와 남은 밥을 찾았다.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물 한 대접을 서로 쳐다보며 벌컥벌컥 마시고는 또 내달렸다. 


동네어른들은 우리 형제들이 유독 밥을 많이 먹는다고 어머니에게 흉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은 간식을 먹지 않으니 당연하다고 항변하셨다.  이웃 아이들은 간식으로 빵이나 과자를  사 먹었지만, 8남매의 밥 한 끼를 이어 대는 것도 힘든 부모님께서 간식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탓인지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간식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거리에서, 마트에서, 음식점에서 먹거리가 넘쳐난다. 심지어 집안에도 먹을 게 한가득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배 꺼질까 봐 뛰지 말라던 시절에 반하여, 배를 꺼지게 하려고 뛰는 세상이다. 먹거리가 풍요로운 세상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도 아침에 손주 녀석과 아침밥 실랑이를 한참 벌인 후, 등교시켰다. 이 녀석은 할미가 크던 그 시절 밥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족함을 경험해보지 못하니 주어진 것에 감사함도 모른다. 


 배 꺼질까 봐 밥 먹고 뛰지 조차 못했던 내 어린 시절, 배고픈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던 그 시절이, 먹고 일부러 뛰어야 하고, 먹기 싫어 불평이 가득한  요즘 아이보다 마음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고맙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