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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Apr 24. 2020

'누나'라는 단어

혼자서만 애틋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시인은 몇 해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누나의 유품을 정리하다 누나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교환 일기 형식으로 쓴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의 내용은 그저 일상의 평범한 내용들 급식 밥이 모자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한 줄. 살아 있다면 그저 대수롭지 않게 웃었을 내용이었다. 유품을 정리하다 말고 시인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책을 읽던 나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쉽게 멈추지 않는 눈물에 괜히 창피해 어색하게 벽을 쳐다보며 얼굴을 가렸다. 이토록 눈물까지 흘리며 과몰입하는 이유는 가족을 잃은 아픔에 공감한 것에 조금 더 자세하게는 누나를 잃은 남동생이라는 것에 마음이 조금 더 시렸기 때문일 것이다. 


늘 누나라는 단어를 듣거나 보면 마음이 쓰인다. 당연히 내가 동생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 단어는 내 동생에서 확장되어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쓰이고 길에서 누나라는 소리가 들리면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누나가 있다고 하면 갑자기 동생 같아 보이고 동생의 나이를 기준으로 어린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누나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순해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누나가 3명인 친구와 얘기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누나들은 동생을 애 취급하는 것 같아. 우리 누나들도 그렇고." 내가 동생이 인터넷 쇼핑 환불 방법을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다고 했을 때 한 말이었다. "애처럼 행동하니까 애 취급하지." 농담으로 넘겼지만 나도 알고 있고 친구의 누나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동생에게 쓸데없이 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중학생 때 엄마 아빠가 한 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를 감지한 나는 이상한 다짐을 했었다.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누구의 편으로도 가지 않고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 내가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겠다고. 그때 동생에게 만약 의견을 물었다면 누나가 뭔데 그러냐며 절대 싫다고 했겠지만. 그때의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다 크다 못해 늙어가고 있는 동생을 대할 때도 여전히 애처럼 보고 있다. 어쩌면 내가 본가를 떠난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생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상하고 애틋한 마음만 본다면 엄청 예뻐했어야 하겠지만 동생에게 누나가 잘해준 기억이 있냐고 묻는다면 잘해주기는 커녕 옆집에서 찾아올 정도로 격하게 싸우고 얻어맞고 욕먹고 혼난 기억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형제자매가 그렇듯 나 역시도 표현에는 정말 끝도 없이 인색하다.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발목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의사는 수술이 잘 못 되면 잘 못 걸을 수도 있고 의가사 제대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고, 그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술하기 전 날 왠지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수술이 끝난 동생의 병실에 가서는 팔자 놓게 누워 있다고 놀리곤 했다. 그러니 아마 동생은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황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평소에 딱히 살갑게 대하거나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동생을 떠올리면 혹시 사고를 치지 않을까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완전히 정반대의 범위를 걱정하면서 쓸데없이 애틋하기만 한 것이다. 



이토록 혼자 애틋한 내 마음과는 별개로 누나는 시누이라는 이미지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나 있는 남자는 결혼 상대자로 별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그 누나라는 사실에, 누나라는 단어가 내 마음과는 달리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따뜻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좀 놀랐다. 그래서 정작 동생은 아무 생각 없는데 혹시나 여자 친구가 누나가 있는 걸 걱정한다면 누나는 집에 오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라고 쓸데없는 말을 한다. 그러면 동생은 있지도 않은 내 여자 친구 걱정하지 말고 누나 결혼할 사람이나 데려오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  꼭꼭 숨긴 애틋한 마음과 달리 전혀 살갑지 못한 격한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언젠가 이런 애틋한 마음을 동생에게 전할 날이 있을까? 상상만 해도 헛구역질을 할 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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