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절망에 대해 말하는 것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남편의 간을 이식받았다. 그런데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간이식 후 먹어야 하는 약들을 먹지 않아 다시 건강이 나빠져 입원을 하게 됐다. 의료진들은 환자가 다시 약을 먹고 회복할 수 있도록 많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의사에게 조소 어린 표정으로 편하게 살아온 사람이 내 심정을 어떻게 알겠냐고 말하며 돌아눕는다. 그날 밤 의사는 환자를 찾아와 자신도 같은 경험으로 이혼하게 됐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잘 살아야 했다고, 미워하고 부정하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고. 그제야 환자는 약을 먹는다.
의도를 던지는 방식이 직접적이고 극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경험을 종종 할 수 있다. 어느 영화감독은 자식을 잃은 후 위로해주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말들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데도 위로에 응해야 하는 것 같아 부담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자신은 여전히 슬픈데 이제 괜찮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고. 그때 한 남자를 만났는데 대뜸 그가 자신도 같은 처지라고 하며 우리는 한 배를 탔습니다.라고 하는 말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이 위로받는 것은 때때로 오래 알던 친구도, 가족의 말도 아니고 단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도 있다. 그가 극복을 다 하지 못한 상태라고 해도 같은 상황에 있다는 동질감만으로도 힘을 얻는 것이다.
꼭 인생을 크게 흔드는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소한 짜증이나 상처에도 같은 감정을 얻을 수 있다. 직장상사에게 못된 말을 들었을 때도 가족에게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에도 혼자 끙끙 싸매고 아파하는 것보다는 같은 경험을 한 이들과 같이 분노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인터넷 게시판에 시시콜콜한 경험들을 올리는 이들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같이 나누는 댓글들을 보고 힘을 내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지인,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일 뿐인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증상이나 하는 생각들이 그로부터 몇 년 전에 내가 겪었던 증상과 생각들과 아주 비슷했다. 내가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그는 그저 아무나 말할 사람이 필요해 말한 것뿐이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겪었던 시간들을 말을 할까 말까. 만약 말을 한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그런 얘기가 오히려 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 경험을 말하면서 충, 탐, 해, 판을 하게 되지 않을까, 또 그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만 한다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냥 병원을 추천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끝내 자세한 내 얘기는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다 대화는 끝났다.
그리고 서점을 갔는데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의 사람 공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잃고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을 제일 위로해주었던 건 정신과 진단도, 약도, 의사의 상담도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치료들은 아이를 잃었는데 부모가 편해지려고 이런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해 더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 준 것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느끼는 감정을 얘기하고 울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엄청난 말을 해 줄 필요가 없구나 그저 내가 느꼈던 감정만을 말해도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조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절대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의 절망, 무기력함, 정상인 것처럼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 애썼던 내 어리석은 모습들을 최대한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 그 불안과 고통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여러 행동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중에 효과가 있었던 행동, 생각 그리고 더 힘들게 했던 행동들도 말했다. 그가 상처를 받을 지도, 또 내가 상처를 받을지도 몰라 두려웠지만 나보다는 조금 수월하게 그 시간들을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스스로가 너무 나약하게 느껴지고 영원히 그 안에 갇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조금은 오래 계속되겠지만 분명 끝이 있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려 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내 이야기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경험의 공유에서 예상치 못하게 나도 도움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과거에 대해서 조금 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경험의 공유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꼭 친한 사람과만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대화를 통해 사이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기고 싶은 아픔과 숨겨야 하는 줄 알았던 상처가 서로의 약이 되고 의지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이 고해의 바다인 생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때때로 잊고 살지만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절망에 있는 사람에게 섣부른 위로나 희망을 건네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와 같은 절망에 있는 이에게는 지레 겁먹거나 숨기지 않고 내 경험을 나누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