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서울여행의 결과

매실은 신맛을 남겨 이빨이 약해지고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실제 상황이 벌어진 남산 나무 그늘에 앉아 나는 서기 2천 년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인가 생각했다. 그건 대략 1983년 여의도에서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3분 동안의 시간과 비슷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3분은 그처럼 길었고 서기 2천 년은 그토록 빨리 찾아왔으니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겨울 나는 서울 어느 법원 방청석에 실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즈음 내 장래희망은 변호사였다. 장래희망을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해도 주변에서 굳이 의문을 가지지 않는 마지막 시기이지 않을까. 장래희망을 처음으로 적어서 발표하기 시작할 때부터 열 번도 더 바뀐 것이었지만 화가나 가수 등 엄마 기준으로 현실감이 없는 장래희망만 말하다 처음으로 엄마의 기준에 부합하는 직업이 나오니 엄마는 그 희망을 잘 키워 갔으면 했나 보다.


어느 날 엄마가 재판 방청을 가 보겠냐고 했다. 학교도 안 가고 친구들도 집으로 오라고 하니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 살이 5kg 나 찐 상태였다. 서울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지만 매일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살짝 지겨워 그러겠다고 했다. 당연히 엄마와 같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날 엄마는 아빠 지인들과 봉고차를 같이 타고 갈 거라고 말했다. 그때 도저히 못 가겠다고 말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약속 장소에 나가 보니 몇 번 본 적 있는 아저씨들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몇 번 본 적 있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보다 훨씬 불편했다. 꽤 긴 시간을 어색한 상태로 아저씨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고 사 준 간식도 배 터지게 먹으며 법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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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보던 세트장과 똑같은 방청석에 앉으니 나름대로 기분이 신선했다. 재판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입장하고 변호사들은 적어 온 원고를 평화롭게 읽어 갔다. 평화로운 재판과 달리 내 기분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재판은 당연히 드라마에 나오는 열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고 장래희망이 변호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춘기 소녀에게는 제법 큰 실망이었다. 이런 걸 보려고 서울까지 왔다니...... 재판이 끝나고 심란한 마음으로 차에 오르는 내게 아저씨들이 어땠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 나니 지겹던 침대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빨리 집으로 가고만 싶었다.


그때 한 아저씨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서울대에 들렀다 가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 얘길 들으니 또 솔깃하긴 해서 시간이 괜찮으면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방금 현실은 드라마 같지 않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서는 또 대학교가 배경인 시트콤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려서 구경할 시간까지 없어서 차는 캠퍼스를 한 바퀴 휙 돌고 나왔다. 고작 나 한 명을 위해 예닐곱 정도의 사람이 갈 필요 없는 길로 돌아갔으니 내가 좀 신나 했으면 좋았겠지만 고등학생도 되기 전 이미 대학에 대한 로망은 노는 것 밖에 없었는지 너무나도 건전한 캠퍼스 풍경에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대신해 아저씨들이 감상을 말했다. 야- 여기 있으면 공부 잘 되겠다. 공부밖에 할 게 없겠네. 그렇게 당일치기 서울 여행은 마음의 상처만 두 번 남겼다.


내 장래희망은 그 길로 다른 것으로 바뀌었고 나는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다. 엄마 아빠는 서울 다녀와서 받은 충격을 얘기했던 것이 꽤 인상 깊었는지 우리 집에는 그 이후로 서울대 캠퍼스를 보여줘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농담이 탄생했다. 서울에 와서 열심히 놀러 다녀 보니 그때 내 로망에 가까웠던 학교는 연세대였다. 그래서 그때의 나와 같은 시기의 동생을 서울로 불러서 캠퍼스도 구경시켜 주고 신촌 홍대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하지만 역시나 동생도 연대 근처도 가지 못했고 우리 집에서만 통하는 그 농담은 한 문장 더 늘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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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날 이후로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의도와 결과가 잘 들어맞는 장면이 인생에 얼마나 될까. 오히려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휘말리는 콩트나 시트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큰 실망을 안기고 과장 조금 보태 내 인생의 방향을 흩어버린 그 날 하루처럼 인생이 의도한 대로,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또 그 사실을 잊고 혼자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마냥 기대는 쉽게 생기고 상처도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그건 인간의 본능인 걸까, 아니면 아직 인생을 얼마 살지 않아서 일까. 얼마나 살아야 마침내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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