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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Feb 08. 2024

<the child in time>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

이 영화는 줄리언 파리노가 감독한 넷플릭스 상영작이다. 영화는 동화작가인 아빠(스티븐)와 아이(케이트)의  소소하고 즐거운 일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슈퍼마켓에서 아이와 함께 쇼핑을 마치고 계산을 하는 도중 갑자기 아이가 사라진다. 아내(줄리)는 남편을 원망할 수도 아이의 빈자리를 함께 마주할 수도 없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 집을 떠난다. 스티븐은 아이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찾을 수 없다.


스티븐의 가장 친한 친구 찰스는 출판사를 경영하며 정부의 교육 관련 정책 관련 일을 맡고 있다. 스티븐은 동화작가로 찰스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아동위원회 일도 함께한다. 스티븐이 참석한 아동 위원회에서 부모 모두 직장을 다니는 가정의 아이 교육에 대한 정부 권고를 주제로 회의를 하고 있다. 스티븐은 육아 안내서의 내용이 사회의 변화흐름에 역행하듯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규율을 잘 따르는 내용인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찰스 또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회의를 느껴 은퇴를 선언한다.


시간이 흘러 스티븐은 줄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줄리의 마음을 알 수없어 연락할 수 없다. 스티븐은 찰스의 아내 델마의 조언에 힘입어 연락을 하고, 아내 줄리가 살고 있는 시골집을 향한다. 스티븐이 줄리의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딸 케이트의 환영을 본다. 스티븐은 급히 뒤쫓아 가지만 아이는 사라지고 더 벨이라는 펍 앞에 서있다. 펍 안에는 낯익은 젊은 여성과 남성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티븐은 잠시 서서 바라보다 줄리의 집을 향한다. 줄리의 집에 도착한 스티븐은 케이트의 환영을 보고 뒤쫓다 진흙탕 위에 넘어져서 옷이 더러워졌다. 줄리는 옷을 세탁해 주고 둘은 잠자리를 함께한다. 이후 스티븐은 미련이 남아 줄리에게 더 머물러도 되는지 묻지만 줄리는 거절한다.


스티븐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학교에 들어가는 초등학생 무리에서 케이트의 환영을 보고 뒤쫓는다. 마침내 학교까지 따라가서 확인하지만 교장은 케이트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집으로 돌아온 스티븐은 부모님 집을 방문한다. 스티븐은 아버지에게 찰스에 대해 물어본다. 아버지는 찰스를 이해한다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스티븐과 부모님의 식사장면, 스티븐은 줄리의 집 근처에서 보았던 더 벨이라는 펍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티븐의 어머니는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스티븐을 임신했을 때 결혼 전이었기에 출산을 해야 할지에 대해 스티븐 아버지에게 말하기 위해 찾은 곳이 더 벨이었다고 한다. 그날 스티븐의 어머니는 스티븐에게 믿지 못하겠지만 더 벨에서 환영처럼 어린 소년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 소년이 스티븐이라고 말한다.  스티븐은 그 당시 뱃속에서 그곳을 보았던 것일까. 그래서 방문했던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일까. 어머니는 스티븐에게 케이트를 느낄 수 있다면 살아있는 것이라며 그리워하기보다 사랑하라고 말한다. 초현실을 믿는 건 아니지만 가끔 삶을 뒤돌아 보면 초현실까지는 아니어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스티븐은 한적한 시골로 이사 간 찰스부부를 찾아간다. 찰스는 어린아이 복장으로 전쟁놀이를 하듯 숲을 누비며 뛰어다닌다. 찰스는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아지트를 만들었다며 스티븐을 데리고 간다. 자신이 만든 이상한 음료를 주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는 찰스에게 스티븐이 묻는다. 왜 그렇게 사는지를... 찰스는 유머책을 쓰고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찰스의 말...  "나는 아이를 찾고 있어. 사라진 게 아니라 금지된, 거절당한 아이... 나는 그 아이를 찾아야 해." 찰스는 그 아이를 찾기 위해 온종일 숲을 누비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티븐은 찰스가 자기 아이를 잃어버린 것에 비교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해 찰스에게 화를 낸다. 스티븐은 델마와 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찰스에게 사과한다. 스티븐은 델마에게 참고 견디고 있는 지를 묻는다. 델마는 기다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스티븐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스티븐에게 어떤 책을 쓰고 있는지 묻는다. 스티븐은 답한다. 물고기가 되고 싶은 소년에 대해 쓰고 있다고... 스티븐은 욕조에서 숨 참기 연습을 한다. 점점 숨 참는 시간을 늘려 나간다. 소년은 왜 물고기가 되고 싶은 것일까... 스티븐은 아동 위원회 동료가 보여준 육아안내서를 보며 유머책이 찰스가 작성한 육아안내서라는 것을 직감한다. 이어 찰스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찰스를 찾아간다. 스티븐은 찰스의 집 근처 숲에서 그의 주검을 발견한다. 절규하는 스티븐... 스티븐은 찰스의 장례식 장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인 찰스에 대해 장례식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의 정직한 성품과 타고난 순수함 그리고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과  그가 유년기의 소중함을 지켜주지 못함에서 가졌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끝으로 유머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잠을 자던 스티븐에게 환청과도 같이 케이트의 못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깬다. 병원으로 와달라는 줄리의 전화다. 스티븐은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소년을 본다. 줄리가 자신의 시골집에서 보았던 그 소년... 스티븐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줄리는 아이를 낳고 있다. 아들이네요...라는 간호사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스티븐이 찾는 아이와 찰스가 찾는 아이가 대비된다. 우리는 살아가며 한계 상황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을 때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상실감을 느낀다. 찰스는 스티븐에게 사라진 게 아닌 금지되고 거절당한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스티븐이 사라진 아이를 찾고 있는 것이라면 찰스는 누군가에 의해 또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다. 스티븐이 케이트가 그리워 환영을 보며 일상을 버티는 모습과 찰스가 스스로를 학대하며 내면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고통의 강도가 비슷해 보인다. 찰스는 아이처럼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숲 속을 뛰어다니지만 점점 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드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하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찰스가 잃어버린 아이는 스티븐과 달리 실제적인 어린아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수가 순수하다고 인정하는 어린아이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순수한 어린아이 상이 일치할 수 있을까. 다른 관점으로 보면, 혹시 자신이 규정한 삶의 방식은 아닐까. 삶의 방식은 자신이 구조화하고 선택한 삶의 진리이자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의 진실 또는 진리는 가볍고 유동적이지만 또 다른 어떤 이는 죽음을 선택할 만큼 무거운 것은 왜일까. 스티븐은 실제 아이를 잃어버렸기에 찰스보다 공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찰스는 공감의 대상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진리 또는 진실은 각자 다르게 표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공감이 가능한 사람은 매우 적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숲을 뛰어다니던 중년의 남자 찰스의 잔상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내가 믿는 진실, 정의, 또는 진리는 무엇이며 그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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