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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Feb 26. 2024

<각각의 계절>

지금 나의 계절은...

<각각의 계절>에 펼쳐진 각각의 이야기가 각각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내 감각에 스며있는 각각의 기억을, 각각의 흔적을, 그리고 각각의 감정을 소환한다.


『사슴벌레식 문답』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 신입생들은 낯선 공간에 던져진 새끼 오리들처럼 초창기에 대학가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 대학 친구는 초·중·고 친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청소년에서 어른을 향해가는 사이,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실체 없는 실체를 찾아 헤매며 나눈 말들이 깊숙이 박혀 불가역적인 회귀를 반복하게 하는 기억의 흔적 때문일까...

"누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까. 갈등과 암투만을 먹고사는 인간이."

- 때로는 주변인들이 나를 규정한다. 낯선 듯 친숙한 말투로 ….  때로는 그 말들에 수긍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정원에게 전해 들은 사슴벌레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정원이 숙소 방을 비질하다 커다란 벌레를 발견한 얘기를 했다. … 방충망도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정원의 질문에 주인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 더니 이내 득도한 듯 인자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사슴벌레식 문답 …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 내가 나에게 묻는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변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변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가볍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가벼워….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 누구나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크데리다의 사유와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기 정당화 또는 자기 합리화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사유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 잠이 오지 않는 밤 캄캄한 어둠 속에 누워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다 보면, 그래서 기억해 내려는 무언가가 어슴푸레, 마치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대상처럼 거리를 두고 그 실루엣을 드러내는 듯하다.  … 그렇게 밤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기억하는 듯한 겹기억이 탄생한다. 애쓰면서 동시에 자신의 현재를 함께 떠올리곤 했을지 모른다. 불면이 만드는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오래된 과거를 향해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그런 무서운 기억 원환을 하염없이 더듬더듬 헤매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갇힌 기억 속의 내 옆에 쌍둥이처럼 갇힌 지금의 내가 웅크리고 있다."

- 지금, 이 시·공간의 나는 지나온 시간, 어느 기억의 시·공간을 마주하고 있을까...


『실버들 천만사』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지금껏 나는 무슨 짓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 두려워 도망치고 두려워 숨고 두려워 끊어내려고만 하면서.… 사랑해서 얻는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 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 관계의 굴레를 벗어나려 수많은 시도를 하지만 도피도 탈주도 할 수 없이 돌고 돌아 반복적으로 같은 자리에 서있다면 무감한 듯 서서히 관계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집안에서 가장 작아서 미천한 존재인 막내 마리아는 자라면서 가능한 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기 존재를 감추고 무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 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에 사는 것 같지만, 모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세계의 경계 어딘가에 숨죽이고 살아가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 계절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계절은 늘 새롭고 늘 새로운 힘을 요구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계절에는 어떤 힘이 필요할까….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익아, 너 원채가 뭔지 아니?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빚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

- 원채란, 욕구와 요구, 그리고 불만족이 만들어 낸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일종의 공허한 공백의 공명은 아닐까...


『기억의 왈츠』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 의식과 무의식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의도적인 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리 까봐 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 그 모음 하나는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와 자연의 윤리 또는 생태계의 섭리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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