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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Mar 27.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소한 일상을 따라서...

작가 클레어 키건은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 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웨일스대학교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그리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클레어 키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아일랜드  정부 협조 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래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선 한 남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소설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시작된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망인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일을 했고, 그곳에서 펄롱을 낳았다. 펄롱 엄마를 가족들은 외면했지만 미시즈 윌슨은 자기 집에서 일하며 지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필롱이 자라자, 자식이 없는 미시즈 월슨은 펄롱을 돌보며 잔심부름도 시키고 글도 가르쳐 주었다. 펄롱은 학교를 졸업하고 기술학교에 다니다가 석탄 야적장에서 일했고, 지금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시내에 살고 있다. 펄롱은 어머니가 갑자기 죽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펄롱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 조개탄 불쏘시개, 가스통을 파는 일을 하고,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딸들에게 기쁨을 느낀다. 펄롱의 삶은 언제나 쉼 없이 흘러간다. 펄롱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어떤 발전을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날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강 건너 언덕 위에는 위풍당당한 수녀원건물이 있다. 수녀원을 맡아 관리하는 선한 목자 수녀회는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직업 여학교와 세탁소를 겸업한다. 그곳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펄롱은 믿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약속시간보다 일찍 수녀원에 배달을 간 펄롱은 수녀원의 처참한 환경을 목격한다. 펄롱은 돈을 받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뒤돌아 나왔지만 그날 밤 수녀원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 아내 아일린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펄롱은 가끔 다른 삶과 다른 장소를 상상하고 본 적 없는 아버지를 회상한다. 펄롱이 수녀원에 배달 갔을 때, 우연히 창고에 갇혀있는 한 여자아이를 마주친다. 펄롱은 수녀에게 배척당한 소녀를 보며 집으로 데려갈까를 고민하면서도 그냥 모른척하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펄롱은 수녀원장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펄롱은 적절하게 균형을 잡을 줄 알아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 펄롱은 미시즈 케호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미시즈 케호에게서 수녀원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이야기를 듣는다. 펄롱은 아내 아일린을 위해 주문한 구두를 찾으러 갔다 나오며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본다. 펄롱은 문득 하루가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는 듯하다. 펄롱은 불안한 걸음을 옮겨 걷고 또 걷다 어둠에 싸인 수녀원에 도착한다. 펄롱은 그곳에서 예전에 보았던 소녀를 다시 만나고, 잠시 망설이지만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 밖을 나온다. 펄롱은 서로 돕지 않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낀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자기에게 보여준 친절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구하고 있는 이 아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펄롱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펼쳐질 고생길을 생각하며 두려워하면서도 순진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진정한 탄생의 장소는 바로 우리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영리한 시선으로 바라본 바로 그곳이다”라고 말한다. 펄롱이 미시즈 윌슨의 마음에 담긴 연민이 어머니와 자신에게로 이어져 있음을 인식한 순간이 바로 그 영리한 시선이 담긴 그곳이 아닐까. 작가가 섬세하게 펼치는 펄롱의 사소한 일상에 담긴 사유가 우리의 심연 어딘가에 있는 고유한 그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 또한 그곳에서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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